[기자수첩] 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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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야누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0.03.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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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얼굴의 신이다. 흔히 이중적인 모습이나 가면을 쓴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수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n번방 사건이란, 추적이 힘든 외국 메신저인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수많은 불법 음란물이 유통된 사건이다. 문제는 그 음란물이 주로 미성년자들을 협박하고 성을 착취해 만들어진 가학적인 영상들이라는 점이다. 

기사를 통해 드러난 n번방의 실체는 글자 그대로 지옥 같았다. 역겹다는 단어로밖에 표현하기 힘든 영상들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기껏해야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성 노예’로 착취당했다. n번방에 참여한 잔인한 관전자들은 그 영상을 보며 함께 낄낄대고 희롱했다. 

사건을 감시했던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n번방에 가입한 참가자들이 26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실로 놀랍고도 끔찍한 수다. 우리 주변을 스쳐지나갔던 이들 중 n번방 가입자가 하나 쯤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들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벗어난 일상 속에서도 그토록 악랄하고 잔혹했을까. 미성년자를 향한 변태적 성욕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조롱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뉴스에 나올 일이라곤 꿈도 꿔보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 학생, 이웃이었을테다. 개중 몇몇은 주변인들에게 칭찬받는 ‘착한’ 이웃이었을지도 모른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추악한 이면을 숨겨놓은 채로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우리의 모습이 진짜 신앙을 점검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들 한다. 온라인 세상 속 나는 과연 신실한 신앙인이었을까. 혼자 남겨진 나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았나. 끔찍한 범죄를 목격하며 분노하지만 한편으론 찝찝함이 영 가시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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