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식사는 하셨는지요?
상태바
예수님, 식사는 하셨는지요?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0.03.24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97

요한복음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나는 요즘 원 없이 말씀을 읽고 있다. 모든 강연과 강의가 중지되니, 글 쓰는 것과 성경묵상이 나의 24시간의 두 축이 되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집중하여 말 그대로 일점일획에 온 마음과 힘을 쏟아 읽으니 양치질만 한 채 하루 종일 세수도 안 하고 말씀을 읽는 날도 여러 날 되었다. 남들이 보면 나를 더럽다고 하거나 불경건하다고 손가락질 할 수 도 있다. 예수님마저 ‘얘, 좀 씻어라’ 하셨을지도 모른다. 

이런 적도 있었다. 어차피 나는 혼자 사니 누구를 밥 차려 줄 걱정은 안 하니 배만 안 고프면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얼마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수저질이 필요없는 먹거리를 옆에 놓고 말씀을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물론 나도 지금 수입이 거의 0원인 상태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이렇게 말씀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랴!’ 그러면서 빵을 한 입 먹는데 그만, 부스러기가 성경책 위로 떨어졌다. 그런데 하필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빵부스러기를 치우고 다시 읽어 내려갔다.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예수님은 저녁을 배부르게 다 잡수신 것도 아니었다. 아마 여러 복잡한 심정인 데다가 시간도 거의 없어서 식사하시다 말고 벌떡 일어나신 것 같다. 그리고 하루종일 이리저리 다니느라 땀과 흙먼지에 더렵혀진 발들을 차례차례 씻어주신 것이다. 게다가 배반자 가롯 유다까지 챙겨주셔야(?) 했으니 식사가 식사였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자, 그동안 사복음서 안에서의 예수님의 식사 장면이 새롭게 보였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자주 금식하니 귀신이 들렸다고 하고, 예수님은 먹고 마신다고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다(눅 7장). 그런데 아무리 성경을 샅샅이 읽어도 내 눈에는 예수님이 단 한 번도 식사를 제대로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예수님의 공생에는 비극의 절정처럼 40일간의 금식으로 시작되지 않았는가. 그 뒤 예수님의 첫 식사 자리는 가나안 혼인잔치로 보여진다. 결혼잔치이니 얼마나 먹을 것이 풍성하고, 마실 것이 넘쳐 흐를까.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도 편안하게 잔치에 동참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도주가 떨어졌다. 하필 예수님의 모친은 제자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님에게 부탁을 한다. 물론 예수님은 모친의 부탁을 들어주시지만 과히 흔쾌한 사역은 아니신 것 같다. 그러니 모친의 부탁을 받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식사는 넉넉하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 식사 자리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 예수님은 바리세인이나 세리들과도 종종 식사 자리를 하셨다. 첫 장면은 마태 세리의 집에서이다. 이 집에서의 식사는 간단치 않았다. 집 안팎으로 예수를 정죄하려는 사람들, 무언가 흠을 잡아내려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 한 번도 맛있게, 끝까지 식사를 제대로 하신 기록이 없다. 왜 죄인의 집에서 식사하냐? 왜 손을 안 씻고 먹냐? 당신에게 물어 볼 말이 있다.... 등등으로 예수님의 식사를 방해했다. 

좋은 의미에서의 식사 방해(?)도 있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여인의 경우이다. 예수님이 식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리없이 들어와 뒤에서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웃음이 나기도 하는 장면이다. 어쨌든 그 날, 예수님은 식사를 제대로 못한 건 분명하리라.

예수님의 식사 장면 중 가장 우리를 부끄럽고도 감동하게 만드는 장면은 요한복음 21장의 바닷가의 식탁이 아닌가 한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와서 아침 식사해라.”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이다. 예수님이 숯불에 따뜻하고 알맞게 데워지고 구워진 떡과 물고기로 직접 상을 차리신 것이다. 

40일 금식으로 시작하여 공생에 시간 내내 식사를 제대로 못하신 예수님. 그런데도 배반의 미련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식탁을 차려주신 예수님.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식탁을 차려주시라고 한다. 우리를 배반하고, 우리를 팔아넘긴 사람들을 위해 밥을 먹이라고 하신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하시던 식사자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