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연기 노하우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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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연기 노하우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0.03.17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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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인사이더⑩백석예술대 공연예술학부 연기과 학과장 배우 길용우 교수
백석예술대 연기과 길용우 교수는 지난해 60명의 제자들과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올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선생이자 선배로서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백석예술대 연기과 길용우 교수는 지난해 60명의 제자들과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올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선생이자 선배로서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 아버지’의 반열에 오른 배우 길용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가 최근 어떤 일보다 정성을 쏟고 있는 일이 있다. 바로 후학 양성이다. 그는 지난 2018년 가을학기 백석예술대학교 뮤지컬 학과에서 연기수업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연기과가 새로 개설되면서 학과장으로서 신입생들에게 40여 년간의 연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개강이 늦어져 제자들과의 만남이 미뤄진 데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를 만나봤다. 

길 교수는 지난해 60명의 신입생들과 함께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 “전 학생이 무대에 올라 연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앞세웠는데 약속대로 ‘덫’이라는 작품을 성황리에 마무리 한 것. 60명 모두 무대에서 자신들이 갈고닦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재학생 전원이 무대에 올랐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올해는 더 많은 신입생이 몰린 것 같습니다. 타 학교 연기과나 예술·공연 계통의 학과들을 보면 전체의 4분의 1정도만 무대에 오르고 나머지는 스텝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공연을 했으니 학생들에게 자랑거리가 됐을 겁니다.”

올해는 무려 206명의 신입생이 들어온다. 지난해의 3배가 넘는 인원이다. 학교에서 강의실도 늘려주고 교수진도 충원해줬지만 어떻게 하면 지난해처럼 모두에게 연기할 기회를 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배우의 제1덕목은 ‘정직’

길용우 교수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첫째가 인성이다. 연기자가 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을 꼽는 그는 “진실하지 않으면 연기를 잘 할 수 없다”며 “진실한 사람만이 진실한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진실하지 못하고 음흉하면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힘주어 말하는 또 하나는 ‘지나간 것에 고착되지 않는 것’이다. 배우란 직업은 항상 지난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담아야 하기에 배우 개인의 스타일화 된 모습을 절대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늘 새로운 모습을 창조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어야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도 수도 없는 배역이 지나갔다. 수많은 변신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변신이 있다. 

“참 많은 드라마를 해왔지만 연기자의 결에 따라 대부분 비슷한 역할을 많이 시킵니다. 한 번은 친한 연출자가 평범한 엘리트 사원을 제의했는데 그걸 안 하고 사고뭉치 실직자 역할을 시켜달라고 했어요. 결과적으로 작품이 흥행했고 제 캐릭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1989년 KBS에서 방영된 ‘달빛가족’이었습니다. 당시 지나가던 행인들이 저를 보면서 ‘파이팅’을 외쳐주고 ‘네가 잘 되면 나도 잘 될 것 같다’고 해주셔서 정말 즐겁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국민 아버지’로 기억하지만 정작 길 교수 본인은 평범하고 착한 역할을 했을 때보다 사고뭉치 같은 캐릭터를 맡았을 때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연기자는 해왔던 것들을 잊고 틀을 깨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것.  

“사람들이 저더러 ‘길용우다’ 하는 것보다 극중 배역 이름으로 불러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우리 제자들도 틀을 깨는 멋진 배우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후 방영된 특집드라마에서 김수환 추기경 역할을 맡기도 한 그는 천주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백석예술대의 개신교적 전통과 분위기가 어색하거나 힘들지 않다. 

“이곳은 모든 순서의 시작과 끝이 기도입니다. 매 주일 예배에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고 있고 릴레이 기도회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모태신앙으로 영세를 받긴 했지만 열심인 편은 아니었습니다. 백석예술대학교에 오면서 신앙에 대해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자들과의 만남의 복 계속되길

길 교수는 배우로서 신앙을 갖는 것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 어딘가에 의지하고 매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연기자에게 무척 중요하다. 그는 “힘들 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배우에게 커다란 힘”이라며 “연기를 시작했을 무렵, 너무 고통스러워서 울부짖던 기억이 난다. 그때 신앙이 있었다면 이겨낼 힘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을 텐데 몰랐던 것이 아쉽다”고 회상했다.
 
이어 “연예인의 삶이 화려하다고 오해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면서 “연예인의 삶은 사실 고독하다. 그 고독조차도 하나님과 함께하면 평안해질 수 있고, 풍요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년까지 1년 남았다. 학생들과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제까지의 노하우를 다 쏟아 부어 자신이 있는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떠나겠다는 각오다. 은퇴 후에도 제자들과의 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백석예술대와 맺은 ‘만남의 복’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저는 서울예대 출신이라 지금까지도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백석예대에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수이자 연기자 길용우. 그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서있을 수 있는 순간까지 배우로 살고 싶다고 했다.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연기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 찾아줄 수 있도록 체력관리와 모습관리, 마음관리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래서일까? 나이에 비해 젊음과 활력이 넘쳤다.  

“새로운 작품이 들어오면 두렵기도 하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나를 찾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백석예술대학교에서의 시간도 감사함으로 여기며 제자들과 멋진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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