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대 콜레라가 창궐할 때, 교회가 백성을 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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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콜레라가 창궐할 때, 교회가 백성을 돌봤다”
  • 이인창
  • 승인 2020.02.1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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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한 전염병 치료 위해 봉사자로 나선 1895년 새문안교회 성도들
흑사병 이겨낸 츠빙글리…“중요한 것은 삶과 믿음을 지키려는 자세”
새문안교회 초창기 성도들은 전염병의 두려움을이겨내고, 선교사들을 도와 환우들을 위해 봉사자로 나섰다.
새문안교회 초창기 성도들은 전염병의 두려움을이겨내고, 선교사들을 도와 환우들을 위해 봉사자로 나섰다.

1895년 여름 당시 한양에는 엄청난 규모의 콜레라가 유행했다. 1886년 콜레라가 발생했을 당시 한양에서 6,152명, 100명 당 5명이 죽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지만, 선교사의 지침에 따른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미신에 의존하면서 비위생적 방법을 따른 사람들은 대거 희생됐다.

10년이 지나 다시 콜레라가 발생했을 때, 당시 사람들 사이에는 기독교 병원을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조정에서조차 “예수병원에 가면 살 수 있는데 왜 죽으려고 하는가”라는 방을 곳곳에 붙이기까지 했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다른 선교사들은 1895년 여름 발생한 콜레라를 퇴치하는 데 힘을 모았고, 서대문 밖에 콜레라 환자 보호소를 만들어 운영했다. 하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때 위험을 무릅쓰고 새문안교회 교인들이 자원봉사단으로 참여해 헌신적으로 백성들을 돌봤다.

총신대 김경열 교수는 “어떤 분은 선교사들을 대거 추방하고 기독교를 박해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고, 나아가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며 비하하는 데 동참하는 기독교인도 있다”며 “전염에 대한 염려는 이해되지만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된다. 당시 새문안교회 성도들이라면 중국인이 쓰러지더라도 발벗고 나서 시체가 즐비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왔을 것”이라고 전했다. 새문안교회 교인들과 같은 긍휼하는 마음이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16세기 죽음의 전염병 흑사병이 유럽에서 휘몰아칠 때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신들이 넘쳐났다. 도시 인구 절반이 무참히 죽을 정도로 처참했다. 1519년 8월 츠빙글리가 살던 스위스 취리히에도 흑사병이 돌았고, 츠빙글리 역시 흑사병에 걸려 수개월 동안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살아난 츠빙글리는 자신의 고통스런 경험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의 찬송을 썼다. 음악 전문가들은 이 찬송을 종교개혁 시대 가장 뛰어난 작품이면서, 교회 음악이라는 틀로 포함되지 않는 창작물이라고 평가했다.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자로 참여하면서 겪은 시련을 무서운 전염병을 이겨내는 과정에 비유하면서 가사를 썼다. 츠빙글리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치유 때문이라고 믿으면서 종교개혁에 더욱 헌신했다.

1552년 발행된 찬송가 가사에서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앙인의 각오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주 하나님 위로하소서. 이 질병에서 구해주소서. 죽음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여 죽음과 싸워 주소서. 당신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 이제 당신이 저를 위해서 계속해서 싸울 시간입니다. 저는 순수하고 숨김없이 당신을 찬양하고 더 말씀을 가르칠 것입니다. 천국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면서 당신만을 의지하면서 인내할 것입니다.”

백석대 전 부총장 주도홍 교수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혜를 다해서 우리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500년 전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보여주었던 모범처럼 우리 자신을 신앙으로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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