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교는 민족 운동의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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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교는 민족 운동의 발로’
  • 이웅용 목사
  • 승인 2020.02.1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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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용 목사의 스포츠로 읽는 선교⑦

오랜만에 다시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 하다가 스포츠 선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으로 글을 이어가면 읽을거리가 되겠다 싶었어요. 첫째 질문은, 스포츠 선교가 타문화권 타종교권 복음 전파만을 의미했을까? 두 번째는, 스포츠 선교가 남의 나라에서만 벌어지던 일이었던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교라고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관념이 복음전파, 영혼구원, 재생산, 교회설립 등의 공식으로 자동 연결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런 가요? 제 생각이지만 선교 역사에는 다른 면도 있어요. 선교는 곧 신교육으로 여겨졌으며 그 안에서 스포츠는 민족성을 표현하는 발로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어디 이야기냐고요? 우리 민족 이야기예요.

시간의 태엽을 돌돌 감아서 20세기 초 용정으로 가볼까요? 간도라고 불리는 지역이고요. 요즘은 연변이라고 불리죠. 저는 그 중에 간도라고 부를 게요. 이곳은 1905년 을사 늑약 이후 일본의 강제 지배를 벗어나 민족 재건을 위해 세워진 이주촌이며, 기독교를 정신의 기틀로 삼고 학교를 세워 교육했어요. 실제 이 지역에서 유수한 민족 인사가 태어나 교육 받았답니다.

그럼 이 간도에서 스포츠는 어떤 역할을 했을 까요? 근대 교육을 받고 있던 간도의 조선인들은 체육을 정규 수업으로 진행했어요. 제가 최근에 축구 전문 기자 류청의 박태하와 연변 축구 4년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흥미롭게도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서정성의 대표적 인물이 스포츠, 축구를 즐겼다는 사실을 언급하더군요.

은진 중학교 때의 그의 취미는 다방면이었다. 축구선수로 뛰기도 하고 밤에는 늦게까지 교내잡지를 꾸리느라고 등사글씨를 쓰기도 하였다._윤동주의 생애, 윤일주

스포츠는 교육의 필수 요소였고 이에 앞장선 이들이 당시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 눈에 선하죠. 특히 축구와 같은 종목은 원래 조선의 운동이 아닌 신문화겠으나, 스포츠를 활용한 신교육이 몸을 강고히 해 정신까지 수련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겠죠. 그렇다면 기독교 선교에서 스포츠가 필수 교육에만 그쳤을까요? 이어서 류청 기자가 인용한 글을 더 보시죠?

일제가 감시해도 사람이(축구장에) 정말 많이 모이니까 독립군끼리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_조선족 원로 사진 기자 황범송

위의 배경에는 축구 경기가 민족 자긍심의 발로였다는 걸 볼 수 있죠? 또 실제 독립 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다는 뜻이겠고요. 어떠세요. 기독교인을 통해 펼쳐진 스포츠 교육이 민족 자긍심의 활로이기도 했고, 독립 운동의 실제 현장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요. 영혼 구원과 교회 세우는 일에만 국한 되어 스포츠가 사용 되어지는 현실에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 까요?

과거의 스포츠는 인재를 세우며 민족을 깨우는 일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같은 도구인 스포츠를 오늘 우리는 너무 국한 시켜 영혼 구원과 교회 초청으로만 사용하진 않나요? 고통의 터에서 광활한 심장으로 새 시대를 위해 뛸 이들을 위한 스포츠는 어디에 있나요?

이웅용 목사 / 국제스포츠선교사, 선교한국
이웅용 목사 / 국제스포츠선교사, 선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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