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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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의 길
  • 장원기 목사
  • 승인 2020.02.0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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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기 목사/흥광교회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성탄카드와 연하장 배달로 우체국은 물론 배달부들이 홍역을 치르던 때가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설 명절까지 이어지므로 그 기간은 더욱 오래였다. 그런데 카드나 연하장의 내용들을 짧게 줄이면 ‘복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복을 전하는 방법만 달라졌을 뿐 복을 비는 인사는 더욱 더 봇물을 이룬다. 손쉽게 핸드폰 메시지 등으로 연말부터 시작하여 연초와 설날에 이르기까지 지루하게 서로의 복을 비는 내용들을 보낸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복 받으라는 인사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복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허나 원하고 바란다고 모두다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그대로 된다면 실패하는 삶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운명에 맡기면서 막연한 바람만을 가지고 어리석게 사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진리인 성경은 복 받는 비결을 수학 공식보다 더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그렇게도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비결이 있는데도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시 128:1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복을 받는다고 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것은 가장 쉽게 말하면, 믿음으로 살고,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시 1:1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했으니 ‘복 있는 사람’은 불신앙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약속된 축복이 있다.

구약성경 열왕기서를 보면 이스라엘 남북 왕조의 왕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왕들이 살아온 길을 둘로 구분한다. 하나는 다윗의 길이요, 또 하나는 여로보암의 길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다윗의 길로 행한 왕은 다 복을 받았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한 왕은 누구도 예외 없이 저주를 받았다. 이는 개인도, 가정도, 단체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것을 암흑이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여로보암의 길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많다. 우선 이스라엘 패망의 단초가 된 우상숭배, 불신앙, 불순종, 원망과 불평이다.

최근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 중 하사로 입대한 남자가 성전환수술을 받고 여군들과 함께 생활하며 군 생활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했으나 법이 허용하지 않아 전역을 명했다 한다. 이는 법이 어떠하든 하나님이 분명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지 중간은 창조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이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동성애 또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다 옳다고 하지 않는데 자기 자신과 같은 집단만 옳다고 고집하고 편을 가르는 것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나 완전한 생각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 완전하신데 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않고 자기와 자기 집단의 생각만 완전한 것처럼 편을 가르고 다름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 바로 이런 것들이 여로보암의 길이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내 뜻, 내 생각, 내 경험, 내 삶의 방법, 모순, 편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믿음의 삶이 바로 다윗의 길이다.

그러므로 진정 복 받을 수 있는 복 있는 사람의 길은 오직 다윗의 길이며 이 길을 선택해 변함없이 살아간다면 누구도 예외 없이 복을 받고 형통할 것이다. 금년 한 해 부디 너도나도 다윗의 길, 복 받는 사람의 길로 행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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