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지상사역은 교회 설립의 기초, 성령 강림은 직접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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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지상사역은 교회 설립의 기초, 성령 강림은 직접적 시작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0.02.0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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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① - 기독교회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기독교의 기원은, 따지고 보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을 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복음사역은 기독교회의 시작이 된다. 그의 3여 년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증거였고, 그는 교회 설립을 의도하셨다. 지상 사역을 거의 마감하고 십자가로 향한 여정의 분기점에서 예수님은 이 점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고 하셨다. 좀 더 분명하게 번역하면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고 선언하셨다. 실제로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교회 설립의 기초였고,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교회 설립의 직접적인 시작이 되었다(행 2장).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감람원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 거리는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었다”(행 1:12). 유대인들의 안식일 도보규례는 가장 관용적인 규례였다. 4km 정도의 도보여행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거리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자들은 후에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한곳에서 기도에 전력하였고, 오순절에 성령 강림을 경험했다. 이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이적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성령 강림’ 사건은 언어의 벽을 넘어 언어의 일치를 보여준 것이다. 이 현상은 언어의 장벽, 사회적 계층, 문화의 벽, 혹은 민족적 한계성을 넘어서 전파되어야 할 복음의 성격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때의 베드로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24개의 강화(講話) 중 첫 번째 강화이자, 베드로의 4편의 설교(2:14~41, 3:12~26, 10:34~43, 15:7~11) 중 첫 번째 선포였다.
 
설교에 대한 반응은 분명했다(행2:37).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주체할 수 없는 죄의 심각성을 안고 몸부림치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을 때 3천여명이 세례를 받고 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오순절 성령 감림은 지상에서의 최초의 신앙공동체인 예루살렘교회의 설립을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오순절을 ‘그리스도교회의 생일’(dies natalis)이라고 불렀다. 예루살렘교회는 세계교회의 모체 교회였고, 지난 2천여 년 역사를 이어온 복음운동의 연원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교회 탄생의 시원이 되지만 19세기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 설립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기독교회의 설립자는 바울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대표적인 학자가 윌리엄 브레데(William Wrede, 1859~1906)였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로서 브레슬라우대학에서 가르쳤던 브레데는, 1904년 할레에서 출판한 『바울』(Paulus, Halle 1904, 이 책은 Paul이라는 제목으로 영역되어 1907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다)이라는 저서에서,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자이며,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으심, 부활과 같은 종교의 근본이 되는 구원 행위를 만든 기독교 신학의 창설자라고 주장했다. 신화적 구원론의 개념을 그리스-로마세계의 토양에 이식시켰고, 이 신학으로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종교가 되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바울이 아니었다면 기독교는 별 볼일 없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 후기 종교 발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볼 때 바울은 ‘기독교의 두 번째 창시자’(the second founder of Christianity)라고 불렀다. 이런 수사에도 불구하고 브레데는 사실상 바울이 기독교회의 창시자라고 결론지었다. 브레데는 바울을 유대주의적 환경에서 배제하기 위해 바울은 헬라철학적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영혼과 육체에 대한 이원론적 이해라고 주장했다. 

/ 백석대 석좌교수.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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