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토론-여성안수문제
상태바
연합토론-여성안수문제
  • 승인 2004.05.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안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교회 성도의 70%는 여성이다. 또한 한국교회사적으로도 교회성장에 기여한 여성도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여성안수에 대해 터부시 하고 있다. 감리교와 기장, 예장 통합에 이어 보수교단인 예성까지 여성안수를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여성안수는 신학적으로 위배되는 것인가. 여성안수, 찬성과 반대의 뜨거운 신학적 입장을 들어보았다.

찬성

가부장적 사고의 틀 넘는 ‘성경적 시각’

여성 안수, 참 쉽지 않은 이 주제에 대한 글을 부탁 받았을 때 약간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이 두 자리 비율을 차지하며, 여성 파워가 어느 때 보다 빛나고 있는 지금, 반대의 글을 쓰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보수적이라 할 것 같고, 찬성의 글을 쓰면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비난이 쏟아 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덮어둘 수 없는 일이 바로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문제이며, 특별히 여성 안수에 관한 사항은 교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이기에 여성 안수의 간단한 역사와 이에 대한 입장을 신앙의 근거인 성경에 근거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안수 문제는 1932년 장로교 함흥노회 때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는 일사천리로 부결되었으며, 그 후 많은 논란이 계속됐다. 논란의 양상은 사회적인 현실과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고린도서의 내용을 근거로 한 여성 안수 반대 의견이 주를 이루었으며, 찬성하는 이들은 자유주의자로 몰려 많은 곤혹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1956년 기장에서 여성 장로회가 탄생할 정도로 여성 장로 안수는 일찍 시작됐다.

1976년 여성 목사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1백20여 명이 넘는 목회자가 있으며, 1996년 여성 목사를 허용한 예장(통합)에서는 현재 3백20여 명이 넘는 여성 목사가 있다. 현재 여성 안수는 기장을 비롯한 많은 교단들이 허락하고 있으며, 기타 다른 교단들도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다.

여성 안수에 대해 논의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그 논의가 철저히 성경의 바탕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종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여기에 여성이 예외인 것은 아니다. 여성 안수 문제는 단지 상황이 어렵고, 현실적인 벽이 높다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되기 보다는, 복음사역을 위해 과연 무엇이 효과적이며 성서적인지를 분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 안수’에 대한 최근 논의는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들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가부장적인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와 권위 있는 교회의 현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기득권층의 정치적 영향력 약화에 대한 불안감이 반대하는 명분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정치적인 논의들이 주를 이루고, 성경적 여성 안수에 대한 연구와 해석은 주로 신학대학 안에서만 국한되고 있다. 또한 설령 교수들이 연구한 견해가 있을지라도 정치적인 파장 때문에 쉽게 발표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교회의 뿌리, 그것은 반드시 성경에 있어야 한다.

여성 안수에 대해 논의할 때 특별히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요소는 세속적인 페미니즘적 시각이나 기존의 유교적인 남존여비 사상과 같은 비 성서적인 시각을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교인들의 커진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대세의 흐름이기 때문에 무작정 시류에 편승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분명한 성서적, 신학적인 여성관이 정립되었을 때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움직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진보적 성향의 페미니즘과 같은 인권에 근거한 여성 안수 논의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특성을 지나치게 고려한 가부장적인 사고의 틀도 이제 넘어서야 한다. 이제 세속적인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장을 성서의 체로 곱게 걸러서 성서적인 여성관을 정립해야 한다.

윤성원목사·삼성제일교회

창조질서가 여성의 ‘남자 주관’ 불허

여성 안수 문제를 다룰 때에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대결이나 한 편의 폄하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안수 문제는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여기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연약한 여성을 더욱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필자는 기독교가 여성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복음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어린이나 차별이 없다.

나아가서 필자는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봉사와 활동을 귀하게 여기며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의 복음 전파에 많은 여성들이 기여했으며 초대교회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봉사한 것처럼, 한국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많은 봉사와 기여를 했다. 여성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더라면 한국교회는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별은 없지만, 성경은 또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을 가르치고 있다. 중요한 두 곳은 고린도전서 4장 34~36절과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이다. 고린도전서의 본문에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가르친다(34절). 디모데전서에서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한다'고 말한다(12절).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옛날의 시대 상황에 주어진 시대제약적인 말씀으로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러한 금지의 이유로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13, 14절). 곧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주후 1세기의 ‘문화적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가 그러하기 때문이다(창 3:16 참조). 고린도전서 14장에서도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서 잠잠해야 할 이유로서 '율법'의 가르침을 들고 있다(34절).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가르침의 이유를 고린도 교회의 특수 사정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이러한 바울의 교훈은 여성을 무시하거나 차별해서가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음을 이미 분명히 밝혔다(갈 3:28, 고전 12:13, 11:11, 롬 3:22).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정하신 남성과 여성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에 평화를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여성에게 금지되는 것은 남성(성인 남자를 의미함)을 '주관'하는 의미에서의 ‘가르침'이나 ‘말함'에 한정된다. 어린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며, 기도회를 인도하거나 여전도회에서 가르치는 것도 문제가 안 된다. 나아가서 말씀의 은사를 가진 여성이 여전도회의 초청으로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해방 후에 더러 있었던 것처럼, 특별한 은사를 지닌 여성의 경우에 특별 집회를 개최하는 것도 특별한 경우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선교지의 경우에서는 선교지의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여성 선교사에게 많은 것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여기서 금하는 것은 가정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남자를 주관하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성에게 목사나 장로 안수를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과 구원은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진리이며 우리에게 참된 행복이 됨을 믿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과도하게 나아갈 때에는 가정과 교회에 불행이 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시대조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변종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신약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