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셋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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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0.01.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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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기쁨의 세대 / 마태복음 11:16~19 / 찬송: 524

적잖은 사람들이 이 세대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교훈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로 비유합니다. 장터 한 모퉁이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피리를 불고 춤추는 놀이, 곧 결혼식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잔칫집 같은 기쁨 충만한 사역을 보게 합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애곡을 하고 가슴을 치는 놀이, 곧 장례식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초상집 같은 애통이 강조되는 사역을 보게 합니다. 바로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이 세대는 새 양식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17절 말씀에서 피리를 불고 춤을 추어야 할 세대임을 교훈합니다.

이미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신랑과 같이 기쁨이 충만한 결혼식을 시작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신 첫 사건은 기쁨이 충만한 메시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불신의 사람들은 초상집 분위기같이 살아도 우리들은 역설적으로 잔치집의 축복인 새 양식을 먹는 기쁨과 새 술을 마시는 기쁨으로 결혼집 분위기 같이 사십시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안에 새 시대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화요일 / 네 사명을 다하고 있느냐? / 창세기 4:9~10 / 찬송: 461

네 아우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때 가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시치미를 뗍니다. 다시 하나님께서는 네 아우의 피가 내게 호소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며 가인을 질책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인에게 몰라서 물어 보셨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선악과를 따먹고 나무 뒤에 숨은 아담을 향하여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하나님께서 물어 보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네 사명을 다하고 있느냐?”, “네 위치에 바로 서서 너의 미션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를 물어보신 것입니다. 오늘 똑같은 질문을 내게도 하십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네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느냐?”, “네가 목회자로서, 신자로서 네 위치를 지키고 있느냐?”, “네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어보실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새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가인에게도 가죽옷을 입히시고, 보호표를 주시면서 연민의 마음으로 품으셨습니다. 확 밟으시고 다른 존재로 새로 시작하실 수 있지만, 인간의 편에서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인간 눈높이에 맞추신 것이 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오늘의 기도

새로운 기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소서!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수요일 / 세월을 아끼는 삶 / 에베소서 5:15~21 / 찬송: 355

세월의 빠름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가는 세월을 막을 자가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세월을 아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에 큰 힘이 됩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세월을 아낀다는 의미를 마음 판에 새기고 2020년도에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월을 아끼는 삶이란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세월을 아끼는 삶이 될까요? 첫째, 지혜 있는 자의 삶입니다. 본문 15절에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지혜란 땅에서 얻은 지식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지는 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자의 삶입니다. 본문 17절에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해하라는 단어의 의미는 대충 판단하여 넘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그 말씀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세월을 아끼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2020년도에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여호수아 24:14~18 / 찬송: 304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게 되면 출애굽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이 하나님만 섬기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서약식을 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 서약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부르신 은혜가 없었다면 이런 복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본론을 이야기합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삶입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강한 결심을 고백합니다. “너희들은 누구를 섬기든지 나와 내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노라이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삶의 증거를 보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복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복을 담고 살만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쓰시는 부자답게 사는 것이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쓰시는 건강한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 복을 다 받아누림으로 가정 천국, 교회 천국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올 한 해도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가정과 삶이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문강원 목사 / 원천교회

 

금요일 /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 마태복음 6:16~18 / 찬송: 369

교만은 스스로 자기를 높인다는 뜻도 있지만, 자신의 우월감을 앞세워서 상대방을 판단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삶은 항상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를 구한다는 뜻은, 내 삶에서 가능성과 희망을 찾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 속에는, 하나님 없이는 승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금식이 마치 경건을 자랑하는 수단으로 비쳐질 때가 있습니다. 금식을 얼마나 했느냐는, 경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임에도 우리는 금식의 능력, 금식의 일정까지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설명하는 금식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만난 삶의 문제를 호소하며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을 구하는,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결단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금식할 때는 항상 하나님을 소망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 삶이 사람에게 보이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인다는 뜻은, 그만큼 내 삶의 우월적 의식을 나타낸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삶은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 앞에 죄인된 연약함을 놓치지 말아야 승리합니다. 겸손함이란 단순히 몸을 구푸리는 모습이 아닙니다. 겸손함은 하나님 앞에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내 삶의 주인 되신 주님으로 소망을 삼고 모든 일에 겸손함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유용원 목사 / 한승교회

 

토요일 /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 마태복음 18:18~34 / 찬송: 361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거리의 반증입니다. 성도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놀라운 약속을 합니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

이어서 19절에 합심 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말씀하는데, 이 합심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기도에 관한 말씀에서 갑자기 용서에 대한 말씀으로 연결합니다. 어떤 성도 중에 왜 내 기도는 그렇게 오랫동안 응답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토로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땐 관계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21~35절까지는 용서의 범위와 왜 이렇게까지 용서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합니다.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사람이, 1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땅에서 제한 없이 살아가는 방법은 용서입니다. 성도에겐 죄에 대한 탕감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의 문이 열릴 때 축복의 문도 반드시 열립니다.

오늘의 기도

서운함과 분노로 꽉 막혀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용서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열린 하늘의 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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