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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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 승인 2004.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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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간호사로부터 “딸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충격이었다. 아빠가 됐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이 아이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부모로서 자녀 양육의 책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자녀 양육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우리 어머니는 필자가 아비가 되고 난 후에 때 종종 “아이를 하나 키우려면 품이 3천6백 개나 든다”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까 10년 키워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뜻인데 자식은 10년을 키운다고 해도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한다.

자녀 양육의 중요성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으로 볼 때 현대사회에서 다산은 미개하거나 무책임한 부모로 느껴진다. 옛 어른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제 먹을 것 어깨에 걸머지고 온다’고 했다. 유아 사망률이 높던 농경시대에 가졌던 마음의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건강한 사회생활을 위해 성장기에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이는 부모의 양육능력, 즉 경제적·시간적·정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신학자 랜돌프 밀러(Randolph Miller)는 교육현장을 가정과 학교, 사회공동체, 교회 등으로 광범위하게 나누었다. 그 중에서 가정을 사회의 기본적 창조질서로 기독교 교육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현장으로 보았다. 가정의 분위기(atmosphere)를 통해 인격이 형성되므로 가정이 가장 좋은 기독교 교육의 장이 된다고 보았다.

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모방이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과 행동, 인생관은 자녀들이 그대로 모방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보여주는 부모는 자녀에게 훈계하지 않더라도 부모의 생활습관 자체만으로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노벨상의 25%, 미국 대학 교수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비결은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인구가 많거나 국토가 넓어서도 아니다. 유대인 가정의 신앙교육에 해답이 있다. 그들은 가정에서부터 율법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유대인 가정교육은 ‘쉐마(Shema)’교육에 있다.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들려주는 말씀에 자녀 교육의 비결이 있었다.

신명기 6장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는데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것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했다. 칸트(I. Kant)는 인간은 ‘교육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는 ‘교육에 의해서만 바른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사회는 자녀 양육을 위한 유해환경이 너무 많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외출한 순간부터 걱정이다. 자녀들의 활동을 아무리 감시하고 차단해도 사회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어 막을 길이 없다. 장애인 시설이 제 집 주변에 들어오면 집 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녀교육에 문제가 된다며 반대한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며 나누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는데 그것을 외면한다.

건강한 사회, 번영하는 민족은 자녀 양육에 성공한 부모들에게 달려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가정 파괴 현상은 국가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다. 깨진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 보자.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녀의 앞날을 불행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 불안 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피해자들이 될 것이고 우리는 심각한 사회적 파괴현상에 힘겨워하게 될 것이다.

유영설목사/문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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