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쿼바디스
상태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쿼바디스
  • 조성돈 교수
  • 승인 2020.01.07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시대가 빠르게 흐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눈부시게 진행되다 보니 우리가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요즘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고 했는데 어느새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실은 이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20161월 전 세계 경제리더들이 모이는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드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했다. 굳이 선포라는 단어를 쓴 것은 거기 모인 사람들 조차 모두 동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선급한 판단이 아닌가하는 의문들이 있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현재 4차 산업혁명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미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시대적 변화가 우리 사회 전반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로봇, 자율주행차 등으로 상징되는 시대의 변화는 우리 가운데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건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이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는 바둑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컴퓨터라도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게임을 시작해 보니 상황은 달랐다. 5판의 승부에서 이세돌은 1판 밖에 승리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너무 충격을 받았다. 기계가 우리의 직장을 앗아갈 것이라는 불안과 이 기계를 인간의 지배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너무 충격을 받는 인류를 바라보며 이세돌은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패한 것은 아닙니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불과 3년 후에 그는 바둑계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1983년생이니 불과 37살의 나이에 말이다. 바둑이 이제 인간의 예술일 수 없다는 한계를 본 것 같다.

사회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니 우리는 혼란 가운데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상당히 어려운 개념을 기반으로 하여 비트코인이라는 화폐가 나타났다. 불과 2년 전 우리나라는 비트코인 광풍이 불면서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다 정부가 규제를 한다고 하여 혼란을 겪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라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 화폐로 거래가 되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화폐라고 하면 있어야 할 기본적인 전제가 없다. 즉 보증을 하는 국가나 중앙은행과 같은 것이 없다. 보통 화폐라고 하면 한 나라 안에서 정부의 보증으로 통용되거나 이를 발행하는 국가의 중앙은행이 그 가치를 보증한다.

그런데 이 가상화폐는 어느 나라도, 정부도, 은행도 보증을 안 해 준다. 그냥 인터넷 상에서 서로의 신뢰로 거래가 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2008년 사카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에 의해서 제안되었다. 이후 주목을 받으며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국제적인 화폐로 자리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카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가상의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 상에서 허구의 인물에 의해 제안되고 구름처럼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자리를 잡고 이제는 세계의 중요한 거래 화폐이며 투자처가 되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이러한 놀라운 일이 벌어지니 정부는 이것을 규제를 해야 할지, 장려를 해야 할지 판단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해 대한민국에서는 극에서 극을 오가는 혼란을 겪었다.

작년에 한 교회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가 끝나고 나니 한 분이 개인적으로 질문이 있다면 찾아왔다. 알고 보니 이분은 경찰로서 비트코인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의 질문은 비트코인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경찰로서 범죄로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을 하는 이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얼마나 답답하면 그랬는가 싶어서 이해도 되었다.

이제 이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는 것만도 어려운 때이다. 너무 빠르게 진행이 되다 보니 이해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불안이다. 못 좇아가면 어쩌는가, 이렇게 좇아만 가도 되는 것인가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에만 눈을 주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을 좇는 것 못지않게 도덕적 기준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에 도덕적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의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