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가죽과 사람의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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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죽과 사람의 명성”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9.12.3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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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91)

두 번씩이나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벌어졌다. 나이 스물일곱에 첫 장례예배를 감당하고 평생에 환우를 위해 심방하는 일과 초상을 치러주는 데만 다녔다.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구나’를 인식하기도 전에 가슴을 치는 반성이 밀려왔다. 응급실에 누워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니 사람이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생각하게 됐다. 거의 무덤 속과 같은 형편은 죽음 같은 의료검사들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생사를 오고가는 순간들이였다. 특히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서명해야 하는 각서는 그야말로 생명을 포기한다는 자진 신고서(voluntary declaration)였다.   

복잡을 피해서 들어간 4인 병실은 25일간 병원생활을 깨닫게 해주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참다못해 간호사에게 불평을 해봤으나 일부러 중환자 한사람씩을 함께하여 관리하는 것이 규정이라고 했다. 행동에 제약이 있어서 그렇지 생각하는 데는 하등의 지장이 없는 터라 흡사 응급실(a first aid room, an emergency room) 같은 분위기의 나날들이었다. 회개의 첫마디가 여기서 나왔다. 교우들이 아프거나 수술하려고 병원에 입원한다 하면 의례적으로 위문했고, 그 아픔과 갈등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파 곪은 부위가 터져 피고름이 새어나와도 아랑곳없이 장례(A funeral is a ceremony with the final disposition of a corpse)를 치를 수 있음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사실 그랬다. 힘들고 어려워도 어린 내가 그런 모진 일들을 잘 감당해 낼 수 있다는 일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어찌하다 기도 받고 환우가 일어날 때면 신통력이라도 생긴 줄 알고 우쭐했다. 겉으론 하나님께 영광이었지만 실제로는 내 자존심 챙기기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의 역사는 그 잘난 이름 한 번 남겨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목회를 한다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받는 일이다. 희망이라는 이름하에 내일의 성장한 자신을 보려고 살며, 다만 천국은 ‘보너스’정도로만 여기는, 능력의 사람이라는 평판에 목을 매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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