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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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
  • 공종은
  • 승인 2019.12.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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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신앙 난민들의 한국 살이

그 일이 있기까지는 대한민국으로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의 납치 그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였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종교적 핍박을 당했고, 성경학교 교사가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 파키스탄을 떠나라’는 주위의 권고도 강했다. 그렇게 떠나왔고, 난민이 됐다. 그러나 반겨주지는 않았다. 난민 인정의 길은 멀었고, 아빠와 엄마마저 미국으로 떠났다.

국민의 95% 이상이 무슬림인 파키스탄에서 소명(召命)을 받았던 로빈 목사(41). 어렵게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했지만, 갈수록 극심해지는 일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의 종교 박해를 이기지는 못했다. 견디다 못해 4년 전 한국으로 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로빈 목사와 아내 무살랏 사모(48)는 다시 미국으로의 이민을 알아보기 위해 떠났고, 한국에는 자녀들만 남았다. 강남이라고는 하지만,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반지하 월세방, 거기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파키스탄 세 자녀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의 한국 살이를 들었다.

# 종교 박해 피해 한국으로

4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공포는 아직 생생하다. 파키스탄에서 로빈 목사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고, 아들 보아즈(18)가 납치되는가 하면 수시로 위협을 당했다.

“사람들이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던 부모님들은 물론 우리들까지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낯선 네 명의 사람들에게 납치됐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행인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칠 수 있었어요. 이들은 아빠가 목사이며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것과 엄마가 성경학교를 운영하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정말 무서웠고, 공포를 느꼈어요.”

위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마가 운영하던 성경학교의 교사가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로빈 목사 가족을 찾아온 교인들과 교사의 어머니는 파키스탄을 떠날 것을 강권했다. 납치와 행방불명의 일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수께서 헤롯의 영아 살해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갔던 것처럼, 로빈 목사의 가족들은 쫓기듯 한국으로 들어왔다.

로빈 목사 부부가 미국으로의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 세 자녀들만 오롯이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이지만, 아이들의 꿈과 미소는 밝았다(사진 왼쪽부터 막내 세베롸, 박세호 목사, 보아즈와 미뤕).
로빈 목사 부부가 미국으로의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 세 자녀들만 오롯이 살아야 하는 한국에서의 생활이지만, 아이들의 꿈과 미소는 밝았다(사진 왼쪽부터 막내 세베롸, 박세호 목사, 보아즈와 미뤕).

# ‘신앙-믿음’ 하나 붙든 한국 생활

파키스탄 가족들은 신앙으로 똘똘 뭉쳤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신앙’ 하나 붙들었다. 누구든, 어떤 상황이든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한 성 같은 신앙이다.

“학교에서 매일 아침 큐티와 기도를 해요. 집에서 쉬는 날에도 매일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에요.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실 거예요.”

아이들의 믿음이 이 정도인데, 아빠 엄마의 신앙은 어떻겠나. 킨미니스트리 박세호 목사는 “어머니 무살랏 사모와 아버지 로빈 목사는 예스 신앙, 무한 긍정의 신앙인들”이라고 말한다. 이런 신앙이 무슬림의 땅 파키스탄에 성경학교를 만들었고, 신앙의 자녀와 아이들을 길러내게 했다. UGA성경대학을 다녔던 아버지 로빈 목사는 교회에서 전도사와 목사를 거쳐 예수복음교회(Jesus Gospel Assemblies Church)를 개척해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목회했다.

보아즈는 “아빠는 우리가 신앙을 통해 강해지기를 원하고, 이게 파키스탄과 한국에서의 기도 제목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항상 말씀하신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이런 아빠가 곁에 없어서 많이 힘들고 그립다.

# ‘난민’ 인정 소망

오빠 보아즈와 미뤕(16), 세베롸(13) 세 남매가 그나마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서울 강남에 있는 모 국제학교 이사장의 배려와, 국내에 들어와 있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킨미니스트리(대표: 박세호 목사)와 예수님과하나님나라운동(대표: 김디모데 목사. 예하운) 덕분이다.

4년 전, 경기도 일산에서 지냈던 첫 6개월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던 때를 생각하면, 공부만 하는 지금 학교에서의 생활도 즐겁기만 하다. 그렇다고 학교생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아니다. 비자 문제나 이런저런 행정적인 일로 법원이나 관공서에 가야 할 상황이면 다섯 식구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야 하고, 오롯이 한글로 작성해야 하는 각종 서류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이들 가족을 곤혹스럽게 몰아쳤다. 거기다 돈을 벌어야 했던 아빠와 엄마는 밤늦게 돌아와 새벽처럼 집을 나섰고, 세 자녀들은 피곤에 지쳐 잠든 부모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빵 공장에 다녔던 적이 있었어요. 일이 끝나고 오면 공장에서 만들었던 빵을 가끔 싸 들고 오고는 했는데, 그게 정말 맛있고 좋았어요.”

세 아이들은 이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엄마 아빠의 고단함을 위로해 드려야 했지만, 손에 들린 빵 봉지에 먼저 눈이 가고 그 냄새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이길 수는 없었다.

# 키워가는 ‘의사’의 꿈

의사가 꿈인 미뤕의 얼굴은 밝았다. 아직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마음속 꿈마저 버릴 수는 없다. 일산에서 생활하면서 만났던 16살 또래의 친구들 이야기와 빵 이야기를 할 때는 종교적 핍박과 난민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이 깔깔거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요. 의사가 되려고요. 의사가 돼서 심장병을 앓는 할머니를 치료해주고, 복음을 전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돕고 싶어요.”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한단다. 만나고 싶지만 일산에 사는 친구들이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 그래도 친구들과의 카톡은 늘 즐거움이다.

보아즈는 카메라를 좋아한다. 기자가 들고 있던 기종을 멀리서도 정확하게 알아보았고, 2021년에 학교를 졸업하면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하면서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빠와 떨어져 산 지 벌써 3년. 세 자녀들 모두 아빠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바람을 먼저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있는 난민들 모두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전했다.

# 난민으로 오신 예수를 보라

박세호 목사는 “종교 난민은 현지에서 핍박을 받았다는 것보다,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종교적 차이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것이 힘들다”면서 종교적 난민 지위 인정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그네를 돕는 것이 하나님의 적극적인 명령이며, 우리 또한 일제의 탄압과 총칼 앞에서도 신앙을 지켜왔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교회가 종교적 난민들을 더 강하게 품고 이들의 신앙 자세도 본받아야 한다”면서, 한국 사회와 교회가 난민을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친절하지 않고 품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꼬집는다.

박 목사는 또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물품보다는 함께 이야기하고 친구가 되어 손잡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린 것의 현대적 의미는, 난민들을 위해 내 시간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난민들을 위해 내 시간을 내주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죠. 친구가 되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귀한 시간을 나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들에게서 난민으로 오신 예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야고보서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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