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넷째주 가정예배
상태바
12월 넷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9.12.24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요일 / 오라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 이사야 2:1~4 / 찬송: 220

말세 교회에 대한 권면은 무엇입니까? 교회로 모이기를 힘쓰라는 호소의 음성입니다.

2절의 만일에라는 말씀은 말세에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종말에라고도 흔히 사용합니다. 우리들은 말세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이 시대는 예루살렘 성전도 없어지고 그 성전에서 드리던 동물의 피제사도 없어졌습니다. 이는 성전과 제사에 관한 율법이 새 성전이요 새 계명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말세교회에 있을 축복은 무엇입니까? 복음적인 말씀의 은혜가 있습니다.

3절 중간에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시내산에서 나온 율법과 구별됩니다.(19:20~25). 즉 구약의 율법적 말씀은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정죄케 합니다만 그 죄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완전한 피제사의 제물로 드려서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담당하신 후에는 곧 신약의 복음적 말씀은 죄를 해결케 할 뿐만 아니라 죄에서 자유케 해줍니다. 이것이 말세교회의 신령한 양식이요 신령한음료인 것입니다.

새 시대의 교회는 복음적 말씀 앞에 모여서 성령의 충만하신 은총을 누립니다. 말세교회에서 죽이는 율법이 아니라 살리는 복음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게 하소서.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화요일 / 예수 사랑나누기 / 고린도전서 13:7~8 / 찬송: 314

인류역사학자들의 평가대로 카이사르는 이름을 남겼고, 아우구스투스는 대리석으로 만든 로마를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수님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33년 짧은 생을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몸까지 가지고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는데, 이 세상에 도대체 무엇을 남겨놓으셨단 말인가요? 그 예수님을 가슴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름을 남긴 카이사르,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아우구스투스! 모두 자신의 명예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사랑을 남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성적 사랑이 아닌 멈출 수 없는 영원한 사랑’, ‘감성적이며 인간 본질적사랑’, ‘사랑할 수밖에 없는그런 놀라운 사랑을 남겨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긍정적입니다.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봅니다. 용서할 줄 압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눌 줄 안다는 것입니다. 재물, 재능, , 아름다움, 지혜 무엇보다 참 좋은 예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모든 것을 믿고 바랍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참 좋습니다. 우리 가족과 이웃과 함께 사랑나누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사랑을 가족과 이웃과 나누게 하소서!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수요일 / 예수 그리스도(2) / 마태복음 1:18~25 / 찬송: 94

세상 사람들은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거리에서 울리는 케롤송과 반짝이는 네온싸인이 성탄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이시기까지 하셨겠습니까? 오늘 본문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죄는 내가 짖고 그 죄의 대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본문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이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면서 참 하나님이 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2019년도를 뒤돌아보면 유난히 근심스러운 일들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예수님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근심과 두려움에 눌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여 지는 것이 아닌 임마누엘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근심과 두려움을 날려버리고 세상을 이기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소망 없는 세상에 우리를 한 알의 밀알로 써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소망이 넘쳐나게 해 주시옵소서! 아멘.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동방박사들의 경배 / 마태복음 2:1~12 / 찬송: 125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은 어느날 하늘에 신기한 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별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별을 따라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것도, 멀리 있는 이방인 박사들을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할 자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2절에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성탄을 통해서 결코 잊어서는 안될 부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의 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순종할 자를 부르셨습니다. 동방 박사들과 달리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풀어 가르쳐주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가까운 곳에서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셨는데도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까지도 예수님을 안다고 하는 교인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계속해서 주님을 경배할 동방박사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기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나 기뻐하며 경배했듯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성탄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참 기쁨이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문강원 목사 / 원천교회

 

금요일 / 은혜가 있으면 승리합니다 / 출애굽기 17:1~7 / 찬송: 494

세상은 준비와 노력에 마음을 집중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 은혜와 도우심에 무게 중심을 둡니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고, 잘 준비하며, 열심히 만들었느냐가 세상적인 관점이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는지 바라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마주한 르비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복적인 원망과 불평의 자리입니다. 특히 르비딤에서는 원망과 불평의 수위가 더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반응 앞에 위협을 느끼고, 문제에 대한 부담스러운 마음을 갖게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삶의 선택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어렵다고 힘들어 보인다고 불가능이라고 선언하면 안 됩니다.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처방은 단순합니다. 나일 강을 치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그 은혜를 따라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인생 앞에 판단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가 볼 때 할 수 있느냐, 이 정도면 해결 가능한가를 따지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끌어오고 시작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의 손을 붙들 때,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할 때 우리 삶을 통해서 하나님은 능력을 이루십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문제 앞에서도 기도하게 하옵소서.

유용원 목사 / 한승교회

 

토요일 / 한나의 기도 / 사무엘상 1:1~20 / 찬송: 395

고난은 하나님 섭리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더 나은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 상황도 치열하게 씨름하다 보면 그 자리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는 슬픈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한나는 남편의 사랑은 있지만, 자녀가 없고 두 번째 브닌나는 자식은 있지만, 남편의 사랑이 없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브닌나는 자신의 아픔을 한나를 격분케 함으로 풀었습니다. 아픔과 절망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주변 모두가 불행해지게 됩니다. 한나는 남편의 작은 위로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더 큰 위로를 구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면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아픔을 들어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브닌나처럼 원망과 미움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나처럼 아픔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이 축복의 실마리가 됩니다.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한나의 불임의 상태는 더 이상 미래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불임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한나의 기도는 개인의 아픔을 넘어 역사의 앞길을 여는 기도가 됩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 없이 이 세상이 주는 작은 위로가 아닌 아픔을 넘어 기도로서 축복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