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순간에 온전한 참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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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순간에 온전한 참여를
  • 유미호 센터장
  • 승인 2019.12.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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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호 센터장/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전 세계가 기후 위기로 혼란스럽다. 기후 과학자들이 내놓는 위기 예측은 우리 안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거나 절망하게 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들이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남은 것을 최대로 사용할 생각에만 여념이 없다, 상처 입은 채 절멸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의 수용능력, 즉 지구 생태용량에 맞춘 삶은 물론 사회시스템을 바꾼다는 생각은 않고 있다.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1도가 상승해서 살인적 폭염과 폭풍, 가뭄과 홍수, 산불,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식량문제와 서식지 파괴로 인한 종의 멸종이 예고되고 있지만 파리기후협약 때 제출한 감축목표에 따른 이행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모든 나라가 자발적 감축목표를 다 지켜도 2100년 3도까지 올라 지구가 회복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북반구 영구 동토층의 메탄가스가 방출되어 8도 이상 올라간다는데 위기의식이 높지도 민감하지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온 걸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편리함에 주저하면서 적당히 실천하고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지는 않았나? 아니 위기의 상황 자체를 피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기후 변화 시대를 살고 있다. 기후 위기의 순간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위기를 직접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참 좋다’고 하셨던 피조세계 속이든, 신음하는 피조세계 한 가운데이든 상관없다. 그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의 체험이 절실하다.

더구나 지금은 대림의 절기다. 신음하는 피조물들보다 더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시며, 주님이 직접 오고 계신다. 주님과의 만남을 무엇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만남이라고 뭔가 특별한 걸 생각해보지만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부끄러움에 만남을 미루고 싶어진다. 주님과의 만남을 설레며 기대하기엔 기후 약자들에 대한 사랑이 약하다.

하지만 주님과의 만남은 미룰 수도, 미뤄서도 안된다. 그리고 이 순간 주님과 만남은 기후 위기를 피하고는 이룰 수 없다. 멈추어, 기후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거기서만이 주님과의 만남은 시작될 수 있다. 나 개인뿐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기후 위기를 인정하고 주님을 함께 만나야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바뀌고, 그에 맞는 구체적 계획도 수립되어 실행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와 우리 후손의 미래를 위한 만남이다.

주님은 지금도 나와 우리 공동체를 부르시고 계신다. 일찍이 만나본 적 없는 기후 위기의 풍랑을 만날 우리에게 담대히 물 위를 걸으라 말씀하신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

지금의 기후 위기가 우리가 가진 순간이며, 기후 위기의 이 순간에 하나님의 생명의 전부가 담겨 있다. 우리에게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두려움과 절망, 주저함 모두 벗어던지고  용기 내어 주님과의 만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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