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탈북 소녀 예림이의 성탄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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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탈북 소녀 예림이의 성탄 소망
  • 공종은
  • 승인 2019.12.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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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들의 성탄 소망
성탄절, 낯설었다. 북한 땅을 벗어나기까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였다. ‘성탄절’,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은 탈북 후였고, 그것도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고 나서, 교회에서였다.
 
# ‘성탄절’ 한국에서 처음 들었다
네 명의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봉천동 고개를 오르다가 허벅지 근육이 뻐근해지고 턱까지 차오르는 숨 때문에 몇 번의 거친 호흡을 내뱉고 나서, 거기서 이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해맑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하지 못하는 슬픔이 진하게 배어났다.

거친 숨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찾아 들어간 두리하나교회 지하 예배실에서는 성탄 찬송 소리가 왁자하게 흘러나왔다. 40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을 초청한 부산의 한 교회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 서툰 듯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가사에 계속 눈길을 주며 노래를 불렀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작은 아이들이 북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고, 키가 큰 아이들은 탈북하거나 중국으로 팔려간 엄마가 거기서 결혼한 후 태어나 한국으로 온 아이들이에요. 확연하게 차이가 나죠? 그리고 이젠 탈북 청소년들보다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오는 숫자가 더 많아요.”

두리하나국제학교 교장 천기원 목사의 설명이다. 천 목사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먹지 못해 키마저 작은 이 학생들이 어떻게 사선(死線)을 넘어왔을까’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

 
사회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주는 것, 엄마 아빠와 언니, 가족이 한데 모여 살게 해주는 것, 이것이 교회와 우리가 성탄절에 주어야 할 선물이다.
사회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주는 것, 엄마 아빠와 언니, 가족이 한데 모여 살게 해주는 것, 이것이 교회와 우리가 성탄절에 주어야 할 선물이다.
# 13살 혜은이의 생이별
한국에 온 지 8개월 정도 된 14살 예림이는 그 나이에 마음의 짐이 있다. 2017년 중국으로 나왔다가 공안에 잡혀 북송됐던 언니 때문이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중국으로 넘어갈 때 언니 얼굴도 못 보고 왔어요. 너무 미안하고, 보고 싶고, 같이 살고 싶어요.”

밝게 웃던 예림이의 눈에 왈칵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언니를 만나지 않고 오는 것이 탈출의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기는 했지만, 어린 마음에도 커다란 짐이다. 할머니와 산다는 이유로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던 예림이는 학교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삼촌의 손에 이끌려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났다. 15시간을 꼬박 걸어 중국에 도착했고, 거기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13살 혜은이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엄마와 생이별을 했다. 그게 지난 3월. 하루하루 엄마가 보고 싶은데 10월 이후 연락이 끊어졌다. 그나마 시골에 있는 할머니마저 1년에 2~3번 정도밖에 보지 못한다.

“할머니도 힘들게 일하시는데, 엄마랑 저 때문에 많이 걱정하세요. 엄마와 빨리 연락이 돼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매일 기도해요.”

 
# 북한에서 고아원 운영하고 싶어요
베이스기타를 배워 연주하는 하얀 얼굴에 키 큰 학금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아직 한국말에 서툴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고 농구도 하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머리카락도 갈색으로 물들이고 타투도 하면서 또래문화를 제대로 배워간다.

18살 윤미는 든든한 맏언니다.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7년째 되는 한국 생활 때문에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동생들을 잘 이끈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도 깊다. 후원하는 모 기업에서 “성탄절 선물로 뭘 받고 싶으냐?” 하고 물었을 때 ‘발마사지기’를 사달라고 했단다. 매일 서서 일하는 엄마가 마음에 남아서다.

“엄마는 매일 13시간씩 일하세요. 정수기 일도 하고,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에서도 일하시는데, 계속 서서 일을 하다 보니 매일 같이 다리가 부어요. 그래서 발마사지기를 선물로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선물을 주셨어요. 빨리 엄마에게 드리고 싶은데, 일 때문에 자주 만날 수가 없어요.”

2013년에서야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다는 윤미에게 성탄에 바라는 것이 뭔지를 물었더니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 품에서, 그동안 서운하고 고마웠던 것들을 말해주고 싶단다. 아니 엄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천 목사는 “윤미는 나중에 북한에 고아원을 만들고 싶어해요. 한국에서 받았던 사랑을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통해 보답하고 싶어한다”고 덧붙인다.

 
# ‘사람 사이의 벽’ 교회가 허물어라
네 명의 청소년들은 한국 정착을 위한 바람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두리하나국제학교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60여 명의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네 명 중 맏언니 윤미는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공부하는 중이고, 웹디자인을 배우는 것도 빠트리지 않는다. 친구 중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친구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 정착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이 거대한 벽이 높고 버겁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잡아주는 손이 그 벽을 넘게 한다고 믿는다. 탈북 청소년들이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 주는 것, 그리고 엄마 아빠와 언니, 가족이 한데 모여 살게 해주는 것, 이것이 교회와 우리가 성탄절에 주어야 할 선물이다.

 
# 서툴지만 반듯한 최선의 발걸음
탈북 청소년들의 교육기관인 여명학교가 지역 주민의 반대로 갈 곳이 없다는 소식이 알려진 게 불과 몇 주 전. 두리하나국제학교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두리하나교회 안에서 학교가 운영되는 구조여서 서울 방배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하는 건 별문제가 없었지만, 이사 후 각종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천 교장은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가 한목소리를 내고 사회와 접촉하는 기회를 넓혔다. ‘와글와글합창단’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들이 나누고 양보하고 섬기면서 살도록 했다.

“아이들이 합창을 하면서 함께 노래하는 것과 화음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합창을 하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내 목소리를 죽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리고 세상 앞에 서게 했습니다.”

탈북 혹은 중국에서 온 아이들은 그동안 예술의전당, 각 시민회관, KBS홀 등에서 공연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섰다. 두렵고 떨렸지만, 그 사이 사람들 앞에 서는 법, 세상과 접촉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직은 서툴다. 하지만, 그리움으로 비어 있는 탈북 청소년들의 삶과 소망의 공간에 따뜻한 희망의 새싹이 돋기를, 반듯한 최선의 발걸음을 내딛는 그 끝에 밝은 희망의 시작이라는 선물이 있기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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