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말이 가진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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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말이 가진 힘
  • 송태호 원장
  • 승인 2019.12.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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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⑲

가능하다 혹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 직업이 외교관이라 한다. 그 대척점에 서있는 직업은 정치인이다.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정치인들의 말을 듣다 보면 누구라도 금방 잘 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걸러 들어야 하는 것이 맞다.

외교관들이 하는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으면 안 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통석의 염’이니 ‘유감을 표시한다’ 따위의 외교적 수사를 놓고 해석을 어찌해야 하는지에 따라 갑론을박 해 온 것을 너무나도 자주 본다. 각 나라와 나라끼리의 소통에서 서로 우위를 점하려고 하기 때문에 명확한 표현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 꼬투리를 잡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고 그 것이 더 큰 외교적 문제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외교관 다음으로는 의사의 말이 믿기 어려운 것으로 꼽힐 것이다. ‘완치됩니다’라는 말을 굉장히 아끼기 때문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지만 불행하게도 현재 의사와 환자간의 소통에도 외교만큼이나 큰 간격이 존재하고 있다. 의사가 한 말, 환자가 한 말을 잘 알아들어야 좋은 결과가 나올 텐데 단어에만 집착하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신경성’이란 질환 명 하나 들어 보지 못한 우리나라 환자들은 없을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남자 건 여자 건 걸핏하면 ‘신경성’ 이란 진단을 붙인다. 설사를 하면 신경성 장염이요 소화가 안되면 신경성 위염, 머리가 아프면 신경성 두통이란다. 

어떤 여자 환자가 처음 병원에 오자마자 먼저 다니던 병원의 의사의 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한다. 하라는 검사를 다 했는데 ‘신경성’이라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으라 했다며 자기를 정신병자로 몰았다고 분해했다. 이런 경우 각 장기에 이상은 없지만 기분에 따라 장기를 조절하는 신경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앞뒤를 잘라먹은 의사의 말 때문이던지 의사가 선택한 단어에 환자가 민감하게 반응한 경우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이라는 병이 있다. 당뇨가 조절이 안되어 혈당이 아주 높아 혼수상태로 가는 무서운 병이다.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가 이 병으로 진단되면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의사는 보호자에게 살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이야기 한다. 환자 보호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반이나 살 가능성이 있으니 안심할까 아니면 죽을 가능성이 반이나 되니 절망에 빠질까? 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10년 전에도 10%남짓이 사망했고 현재도 5%정도는 사망하지만 대개의 경우 당뇨병성 혼수로 응급실에 온 환자들의 대부분은 회복한다.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의사도 반반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예상하지 못하는 큰일만 없다면 회복할 수 있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의사는 반반이라고 이야기해서 보호자들을 걱정시킬까? 무엇보다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발언일 것이다. 

통계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지인의 자식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대학을 가겠다고 축하해줬더니 ‘ 그 고등학교가 좋은 대학을 아무리 많이 보내면 뭐해? 내 애가 가야지’라고 이야기 했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1,000명중 100명이 사망하면 10%이다. 그 100명 안에 누가 해당할 지 알 수 없는 것이 병이다. 궤변이지만 환자 한 명에게만 국한한다면 그 환자는 살던지 죽던지 반반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회복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의사가 조금만 자세히 이야기 해 준다면 환자들의 오해도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서로 부대끼고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나쁜 말 보다는 좋은 말을 진정성 있게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회로 향해 나아갈 것이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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