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을 한결같이… “종소리로 겨울 광장을 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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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을 한결같이… “종소리로 겨울 광장을 녹입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12.17 0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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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냄비 봉사자 구세군 아현영문 한용기 정교

영하의 날씨, 용산역 광장에서 만난 베테랑 봉사자
경험에서 느껴지는 ‘관록’…본인 이야기에는 겸손
모금 환경 격세지감 느껴…재미있는 에피소드 많아

지난 13일 용산역 광장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하고 있는 한용기 정교를 만났다.
지난 13일 용산역 광장에서 자선냄비 모금을 하고 있는 한용기 정교를 만났다.

“딸랑.” 서울 용산역 앞 광장에는 12월이면 어김없이 친숙한 종소리가 울린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을 알리는 이 작은 종소리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아주 먼 곳까지 가 닿는다. 빨간 점퍼를 입고 자선냄비 모금을 하는 봉사자가 안내 멘트를 하고 이따금씩 행인들이 자선냄비에 지폐를 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봉사자가 행인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인사를 전한다. 칼바람이 불던 역전 광장에 어느새 훈훈함이 감돈다.

1928년 구세군한국군국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자선냄비 모금을 시작하고 90년여가 흘렀다. 90년의 세월 가운데 절반 가까운 43년을 한결같이 모금에 나선 봉사자가 있다. 올해로 71살인 한용기 정교(구세군 아현영문)다. 장로교회로 치면 장로 직분에 해당하는 그는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이미 은퇴한 시니어이지만 여전히 당당한 자세로 한겨울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13일 용산역 광장에서 모금을 하고 있는 그를 찾아갔다. 43년차 모금의 ‘베테랑’에게서  달라진 자선냄비의 풍경과 봉사를 통해 경험했던 은혜를 들어봤다. 

 

의무로 시작한 자선냄비 모금

“불우이웃을 도웁시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액수가 아니더라도 모금에 동참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천 원짜리 한 장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신용카드로도 모금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정해진 틀 안에서 힘차고 자유롭게 멘트를 구사하는 한용기 정교에게서 관록이 느껴졌다. 이것이야말로 경험에서 나오는 고수의 향기가 아닐까. 그는 이날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2시간가량 모금을 진행했다. 봉사를 마치고 인근의 카페로 들어가 함께 손을 녹였다. 

대화를 시작하자 모금을 할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자선냄비 봉사자들을 대표해 인터뷰를 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으로 “43년이면 봉사자 가운데 정교님보다 오래 한 사람 찾기 어렵겠어요” 하고 묻자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아마 저보다 오래하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저희 아버지만 해도 올해 아흔 세 살이신데 팔년 전까지도 자선냄비 봉사를 하셨어요”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실제로 한 정교의 아버지는 장기 봉사의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마 건강만 허락했다면 지금도 종을 들고 거리로 나가셨을 것이라는 게 한 정교의 설명이다. 

구세군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일찍부터 자선냄비와 함께 자랐다. 첫 모금은 신혼이던 1977년 무렵부터였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교회에 다니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뿌리 깊은 기독교 가문에서 자란 아내를 만난 덕에 본인도 교회 생활에 열심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앞두고 처가에 갔는데 여기도 목사, 저기도 목사에요. 처가는 성결교단에서 뿌리 깊은 가문이거든요.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선 저도 열심히 다녔죠. 자연스럽게 봉사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당시 자선냄비 모금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지금은 구세군에서 나온 두꺼운 패딩을 입지만 그땐 내복 외에 달리 방한 대책이 없었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 코너가 겨울에 엄청 춥습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날엔 30분만해도 손에 감각이 없고, 입이 얼어요. 말이 안 나와서 버버버버 하게 되죠. 그러면 한 사람씩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번갈아가면서 멘트를 하고 했습니다. 지금은 의상도 좋아졌고, 실내 모금도 생겼죠. 그땐 실내 봉사는 꿈에도 못 꿨던 일입니다.”

 

한 정교는 오랜 세월 모금을 해온 베테랑답게 유려한 멘트 구사력을 뽐냈다. 그가 울리는 종소리마저 비범하게 느껴졌다.
한 정교는 오랜 세월 모금을 해온 베테랑답게 유려한 멘트 구사력을 뽐냈다. 그가 울리는 종소리마저 비범하게 느껴졌다.

 

고생이 기쁨 되는 순간

자선냄비 봉사는 주로 영문을 중심으로 스케줄을 짜고 교인들이 릴레이식으로 진행한다. 한 정교가 속한 아현영문은 용산역 광장과 지하철 신용산역을 담당하고 있다. 봉사자마다 한 시즌에 보통 3번씩 참여한다. 보통 12월 1일에 시작해 크리스마스때까지 진행되는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일정에 맞게 반차나 연차를 쓴다.

한 정교도 처음 할 때는 봉사라는 의미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했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봉사에서 오는 기쁨이 컸다. 12월 한파는 똑같이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고사리 손으로 모금에 참여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힘내시라며 따뜻한 음료를 건네는 행인들의 손길에서, 구세군 덕분에 살아났다며 감사를 전하는 인사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모금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일도 많다. 특히 오래 전 지인을 만날 때가 많다. 한 정교는 종로에서 모금을 하다가 20년 전 은사를 만난 적이 있다. 

“돈을 넣어야 하니까 가까이 와야 할 것 아니겠어요? 냄비에 지폐를 넣고 제 얼굴을 쓱 보더니 ‘어 어’ 하는 거예요. 학창시절 은사님이셨죠.”

그런가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구세군 자선냄비를 보고는 자기네 나라 동전을 넣고 가기도한다. 외국 동전을 쓸 수나 있을까 생각했지만 걱정은 금물이다. 이럴 때는 자선냄비 본부에서 외국 돈들을 모아 함께 환전을 한다고. 가끔 스님이 돈을 넣고 가기도 한다. 이미 자선냄비가 종교성을 초월해 대표적인 이웃사랑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음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고 작년에 유명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구세군 봉사자들이 종로 YMCA 앞에서 모금을 하는데 바로 5미터 옆에서 스님이 시주를 받기 시작하더랍니다. 구경꾼들이 모이고 종교 간에 대결을 펼치는 모양새가 연출됐지요. 봉사자들은 속으로 ‘저 양반이 왜 저러나’하고 곤란해 했는데 모금이 끝날 즈음 그분이 자선냄비에 시주 받은 돈을 넣고 가면서 구경꾼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는 에피소드 입니다. 이렇게 이웃사랑은 종교를 초월하는 겁니다. 너나가 없는 거지요. 요즘 나라가 혼란스럽고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럴수록 이웃사랑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조금이나마 화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추울수록 온정은 더 모인다

한 정교는 처음 모금을 시작했던 1970년대를 회상하면서 “그때는 지금보다 모이는 금액은 적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모두가 어려웠지만 동전 한 닢이라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특히 IMF 때는 모두가 어려웠지만 모금에 동참하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그런 것 같아요. 어려운 때일수록 마음이 더 여려지는 것 같아요. 내가 힘들지만 더 힘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정교는 43년간 모금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확신하게 됐다. 경험상 날이 춥고 상황이 열악할수록 자선냄비 모금이 더 활발해 졌다는 것. 비슷한 예로 지하철 역사 내에서 모금할 때보다 광장에서 모금할 때 최대 10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소개했다. 그는 “추울수록 온정이 더 모인다”며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직접 모금을 해보면 따뜻한 사람들은 더 따뜻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교는 이밖에도 종소리 유무와 멘트 유무에 따라서도 모금액이 달라진다며 최근 들어 역사 내에서 종소리와 멘트 소리를 제한 한 것이 다소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하철 역사 내 방송이 들리지 않는다는 민원이 있었다고 해요. 제 생각엔 구세군 종소리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다소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실내에서 쓰는 종에는 추도 달려있지 않거든요. 대신 클립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모금에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은혜, 그리고 감사가 된 봉사

한 정교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에 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요 ‘은혜’라고 했다. 자선냄비 시즌이 오면 하나님께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주셨고 구걸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큼 경제적인 여유를 주셨다는 사실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현직에서는 은퇴했지만 지금도 건축사로서 죽을 때까지 회사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진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설 수 있는 날까지는 자선냄비 봉사를 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봉사를 기쁘게 받으셨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통해 제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처음부터 복을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가족이 화목하고 집안의 어르신들도 장수하고 계십니다. 자녀들도 다 자기 몫을 하면서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으니 인간적으로도 많은 복을 받았다고 봐야겠지요.”

그는 앞으로도 자선냄비 모금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봉사를 통해 얻는 기쁜 마음과 이웃사랑의 정신이 개인과 구세군을 넘어 한국교회 전체에 퍼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모금을 해주는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고생하신다고 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기부자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한 일은 심부름에 불과한데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주신 정성이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리고 큰 위기에 닥친 사람을 살립니다. 귀한 일에 동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행복한 연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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