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 알던 아이들, 낮은 곳을 향할 때 보람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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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 알던 아이들, 낮은 곳을 향할 때 보람느끼죠”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12.11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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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한기총, 한기총에서 국제학교 사역으로
‘금수저’ 아이들…베풀 줄 아는 크리스천으로 자라길

 

이석재 목사의 약력은 꽤나 특이하다.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유학생활을 하며 한인교회를 섬겼고 한국에 와서는 코스타 국제본부 간사로 일했다. 지금이야 구설수의 중심에 있지만 한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이기도 했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몸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환상의 섬 제주도의 다음세대 사역자로 변신했다. 제주에 세워진 국제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매주 3곳의 학교를 찾아가 예배를 인도한다. 교계의 중심에서 일했던 화려했던 이력과는 대비되는 의외의 모습이다. 어찌된 사연인지 지난달 29일 이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목사가 한기총을 뒤로하고 사표를 던진 것은 지난 2012년. 때마침 서울에서 목회자로 와달라는 청빙이 왔다. 제2의 고향과도 같던 캐나다로 돌아가는 선택지도 있었다. 제주도란 섬은 생각지도 않던 곳이었다.

그런데 잘 알고 지내던 목회자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당시 제주에 국제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었는데 이곳의 학생들을 위한 예배를 섬겨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우연찮게 이 목사도 제주도에 여행을 가려 티켓을 끊어놨던 참이었다. 간 김에 한 번 만나나 보자는 생각으로 올랐던 제주행 비행기는 왕복에서 편도가 됐다.

제주 국제학교는 철저한 기숙사제도로 운영된다. 처음엔 크리스천 학생들이 주일마다 잠깐 나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복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기숙사에만 있다 바깥 공기를 쐰 것에 해방감을 느꼈는지 몇몇 아이들이 일탈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외부인에게 꽁꽁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학교 측에서 아이들을 밖에 보낼 수 없으니 일요일에 목사를 보내달라고 교회에 요청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바쁜 주일에 목회자를 학교에 보낼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예배를 인도해 달라는 제안이 오게 된 거죠.”

그때부터 시작된 국제학교 학내 예배. 이젠 학부모들과 학교 밖에서 통학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영어마을교회도 개척했다. 예배가 시작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큰 보람은 학생들의 신앙고백이 달라지는 것을 볼 때다.

사실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밖에서 보면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아이들이다. 평범한 아이들과는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이 많고 이후 사회에 나가서도 영향력 있는 위치에 올라설 가능성 또한 아무래도 높다. 그래서 이 목사는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배’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베풀고 나눌 줄 아는 크리스천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아이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돈을 쓰기 시작했어요. 헌금이 많지는 않지만 얼마 전 추수감사절에 지역에 있는 고아원과 중국인 노동자 교회, 미혼모단체에 후원금과 선물을 보냈죠. 토요일 오후에는 제가 예배를 인도하는 국제학교 세 곳의 학생들이 모여 군 부대 장병과 간부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줍니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낮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해요.”

어려움도 있다. 이 목사는 국제학교 사역을 ‘뒤통수 보는 목회’라고 표현한다. 예배를 통해 만나 정이 들 즈음이면 어김없이 졸업이라는 열차가 찾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방학이나 휴일이면 학생들이 육지로 돌아가 보통의 교회라면 가장 바빴을 성탄절에 교회가 텅텅 비는 역설적인 일도 보곤 한다. 비록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예배를 통해 아이들이 좀 더 깊게 하나님에 대해 알아갔으면 하는 것이 이 목사의 작은 소망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욕을 덜 먹는 크리스천이 됐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칭찬받는 크리스천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 명함에 ‘장’이 붙기 시작할 때 좀 더 다른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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