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그네입니까? 정착민입니까?
상태바
당신은 나그네입니까? 정착민입니까?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12.10 1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92

베드로전서 2;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월 첫 주, 4일 동안 아파트 베란다의 문들을 모두 교체하는 공사가 벌어졌다.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20년 만에 일어난 대변화이다. 모두 10동이 되는 단지의 대공사로 진두지휘하는 사람들의 고함소리, 쇠로 된 창틀과 두꺼운 유리문들을 굵은 줄로 층층마다 이동시키는 기계음 소리, 수십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 등은 평범한 나에게는 그야말로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힘든 것은 현관문을 늘 열어두어야 하는 점이었다. 수시로 일하는 사람들이 드나들며 베란다로 가서 이것저것 공사를 해야 하므로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무조건 현관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나의 집에 귀중품은 하나도 없다. 텔레비전도, 밍크 코트도, 심지어는 가느다란 금반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힘들었을까? 혼자 사는 나에게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나흘 내내 글 작업을 하거나 외출을 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나만의 공간에서 참으로 느긋하고, 안락하게 -물론 내 수준과 형편 안에서- 살았음을 깨달았다. 이런 편안함은 집의 크기나 값어치와는 상관없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솔솔 스며드는 옥탑방이든 더워서 반바지 반팔로 지내는 집이든, 여름이면 곰팡내가 푹푹 나는 지하방이든 추워서 긴소매 옷을 입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집이든. 말 그대로 초막이든 궁궐이든 나만의 집(그것이 단칸방이든)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휴식과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4일 동안의 현관문을 그것도 8시간 동안 열어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다. 문이 열려져 있다는 것,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다가 공사를 시작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문득 베드로전서의 말씀이 생각났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은 물론 자신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거류민(외국인 체류자)들이요, 나그네들-aliens and strangers’이라고. 

여기서 거류민(헬- 파로아쿠스)은 자기가 임시로 거주하는 나라나 지역에 살면서 아무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권리도 없는 신세다. 그리고 나그네(헬- 파라피데무스)는 말 그대로 오래 살지 못하고, 자의든 타의든 다시 거처를 찾아 떠나야 한다.

그렇다고 믿는 자들의 삶의 모습이 비참하고, 비루해야 된다는 말씀은 아니다, 라는 것은 웬만한 성도들은 다 알 것이다. 문제는 진정으로 이러한 태도로 세상을 통과하고 있는 가이다. 

현관문이 활짝 열어도 누가 오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인지?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처럼 언제든 걸인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찾아와도 열린 마음으로 영접할 수 있는지?

현관문을 활짝 열어둘 수 있도록 세상소망이 아닌 천국소망으로 늘 가득한 일상인지? 현관문을 활짝 열고 부르심에 언제든 나설 수 있는 준비된 일상을 보내는지?

현관문이 활짝 열린 것처럼 늘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문을 꼭꼭 닫고, 잠가두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만의, 자기 가족만의 편안과 안온과 휴식을 위해 애쓴다. 웬만해서는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 택배 기사도 현관문 앞에 물건 내려놓고 인증사진 전송하는 상황이다. ‘내 가족, 내가 원하는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집에 못 들어와!’ 물론 날로 험악해지는 세상에 대한 대비책이리라.(혹시 감추고 싶거나 부끄러운 것이 있어서일까? 주님보다 소중한 것들이 있어서?)

그러나 이런 현상이 믿는 자들의 영혼의 문까지 꽉꽉 닫아버리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문만 열려도 우리는 불안해한다. 그것은 예측할 수 없는 외부세계의 영적공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 지금 여기가 좋사오니, 식의 나와 내가족의 편안과 안전에 대한 강렬한 욕망사수에서 오는 것이다. 결코 나와 내 가족은 세상의 나그네나 거류민으로 살 수 없다는 절절함으로 교회 안에서만 형제요, 일단 교회에서 나오면 철저한 정착민으로 나와 내 가족의 부흥을 열렬히 꿈꾸고 애쓰는 가련한 성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