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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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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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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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이상적인 봉사자 / 마가복음 2:1~12 / 찬송: 471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이란 갈릴리 호수 곁에 있는 동네를 중심하여 병을 고쳐주시는 치유사역과 귀신을 추방하시는 축사사역으로 그에게 믿음으로 나아오는 환자들이나, 스스로 나올 수 없어 다른 사람들이 데려오는 병자들에게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본문에는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상적인 봉사자의 자질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출발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8:34)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욕심의 사람, 자기중심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못박고(2:20) 사랑의 사람 곧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고는 봉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무명의 네 자원봉사자들은 연민의 정으로 측은한 중풍병자를 메고 왔다는 사실은 봉사의 기본자질을 갖춘 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메고오고, 지붕을 뜯고, 환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는 수고를 했습니다. 이는 짐을 서로 지는 원숙한 봉사자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봉사의 마음은 중풍병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짐과 질고와 염려까지 짊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랑의 공동체의 죄짐과 질고 그리고 염려까지 질 수 있는 봉사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중풍병자를 메고 나아갔던 친구의 모습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남을 섬기는 봉사자가 되게 하소서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화요일 / 처음 사랑 / 요한계시록 2:4 / 찬송: 314

매너리즘이란 단어는 습관적으로 되풀이하여 독창성을 잃는 일을 말합니다. 버릇이 되어, ‘되풀이되는 일들 속에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고, ‘열정이 식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리사매너리즘에 빠지면 맛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대충대충 되풀이하여 품격낮은 요리사가 되고 맙니다. 진정한 요리사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을 낼 수 있을까 연구하며,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노력하여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약사는 약사일 수 없습니다. 인류의 건강증진에 기여하며 생명을 살린다는 히포크라테스소명의식이 사라지고, 처음의 열정을 잃어버려 직업적으로만 약을 파는, 그런 약사는 더 이상 약사일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일을 맡은 주의 일꾼도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이 사라진 채, ‘매너리즘에 빠져 습관적인 예배자, 주어진 일을 되풀이하는 일꾼은 더 이상 주의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같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출발했을 때에 감사와 은혜, 죽을 만큼 뜨거운 사랑의 감격을 되찾아야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열정을 지니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거룩하신 주님 우리 모두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게 하소서.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수요일 / 하나님의 은혜 / 사무엘하 24:1~9 / 찬송: 403

다윗의 생애를 보면 씻을 수 없는 죄 가운데 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구조사를 시행하는 다윗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다윗은 인구조사를 시행했습니까? 전쟁은 하나님 손에 있음을 망각하고 인간의 왕권을 내세워 군사력으로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는 것일까요?

첫째, 사단의 달콤한 말에 속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에 속았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멀리하고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면 하나님께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함께 전쟁터에서 싸울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자기와 함께할 장군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힘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셋째,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 주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끝까지 승리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주께서 행하신 일을 전파하라 / 마가복음 5:1~8 / 찬송: 508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의 배후에는 악한 원수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귀신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귀신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해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주님은 하나님의 귀한 아들로 여기시고,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주님을 찾아갈 수도 없고, 세상이 다 포기한 영혼까지도 찾아가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에는 두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죽음의 능력이요, 한 가지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먼저 우리의 옛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는 일을 합니다.

두 번째로, 주께서 행하신 일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이 사람은 새로운 삶을 주신 주님과 함께 있으며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할 일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을 만나서 받은 은혜가 있습니까? 삶의 변화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당신에게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에게 전하십시오. 주께서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널리 전파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를 찾아오셔서 새사람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멘.

문강원 목사 / 원천교회

 

금요일 / 다시 시작하라 / 학개 1:7~8 / 찬송: 542

신앙은 과거를 추억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기억들에 대한 집착은 오늘 내 삶이 부실할 때 더 강해집니다. 오늘 내가 마주하는 황무함은, 지난날 소홀했던 시간의 결과입니다.

편하고 쉬운 선택은, 항상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주변 상황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와 반응을 보이면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강해서 이스라엘이 패망했던 것이 아닙니다. 문제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할 때부터 우리 삶은 고쳐지지 않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났던 것이 문제였고 세상을 동경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이 좋지 못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우리 삶이 고단하고 힘겨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믿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이 무조건 희망적인 내일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한 헌신과 충성이 있을 때, 축복의 내일도 준비되는 것입니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정한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라는 뜻 속에는, 화려한 성전을 지으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무게중심을 하나님 앞에 두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절망으로 삶의 환경을 불행으로 이끌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유용원 목사 / 한승교회

 

토요일 / 느헤미야의 기도 / 느헤미야 1:4~7 / 찬송: 539

느헤미야는 어느 날 패망한 조국의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때 그것 참 안 되었어, 잘되어야 할 텐데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소식을 듣고 4절에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문제 지적은 잘하지만 느헤미야처럼 그 문제를 가지고 통곡하며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기도의 진정성은 마음으로 간절히드려지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기도제목이 있어도 간절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성령님을 은총과 간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12:10)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면, 기도에 대한 절박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말을 많이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많이 쏟아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응답 받는 기도의 원칙입니다. 물론 아무리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된다고 믿어도 간절한 삶이 안 되는 사람은 결코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는 나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동일시 합니다. 나라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허공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을 바꾸고 공간을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 힘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하나님께 구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의 기도

느헤미야처럼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민족의 아픔을 아파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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