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에 부르는 ‘가는 세월’엔 전도서의 교훈이 담겼다
상태바
74세에 부르는 ‘가는 세월’엔 전도서의 교훈이 담겼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11.26 0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앙과 삶] 가수 서유석 권사

가수 서유석, 송년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음악회 개최
노래와의 만남부터 낙선까지 삶 굽이굽이 담긴 간증

가수 서유석 권사가 연말을 맞아 송년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우리 마음의 온기를 채우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는 음악회가 되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가수 서유석 권사가 연말을 맞아 송년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우리 마음의 온기를 채우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는 음악회가 되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1970년대 사회성 짙은 노래로 한대수·김민기와 더불어 대표적인 저항가수로 꼽히는 서유석 권사(연세대학교회). 올해로 74살인 그는 연말을 맞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음악회 홍보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그를 만났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어진 식사 자리. 백반집 의자에 앉은 그는 가장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젓가락이며 물 컵을 사람들에게 나눴다. 요란스럽지 않게 그저 묵묵히 작은 일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취재 뒤에 시간도 남았겠다 조심스럽게 단독인터뷰를 부탁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 20년 넘게 DJ로 활약했던 원조 ‘라디오 스타’의 위엄을 몸소 느끼며 그의 노래와 삶, 신앙에 대해 들어봤다. 

우연히 들어선 가수의 길

그는 그야말로 유복하게 자랐다. 교장 선생님이던 아버지에 이름난 서예가였던 어머니 밑에서 5남매 중 넷째였던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가족들이 다녔던 연세대학교 앞 창천교회는 서 권사에게 놀이터와도 같았다. 유년주일학교부터 쭉 나갔지만 핸드볼선수로 대학에 간 후에는 시합하랴 연습하랴 교회를 못 나가는 일이 많았다. 

대학교 4학년 무렵 운동이 무료해지자 정서가 거칠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를 배운 뒤부터는 정말 부쩍 차분해졌다. 기타를 가르쳐주던 선배로부터 “연주보다는 노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는 반주기법을 배웠다. 자신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것은 연주만 할 때보다 더 좋았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기 일쑤였다. 

졸업을 앞두고, 다니던 대학 주변 카페에 지배인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카페 지배인은 대학생들이 주로 맡아서 했는데 외상으로 시계나 학생증을 맡기고 간 손님들에게 돈을 받아 오는 게 주 업무였다.  

당시 그 카페에는 돈 받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었는데, 하루는 일당을 올려달라고 떼를 쓰기에 “그만 두라”고 해버렸다. 그 말에 사장이 놀라자 “노래도 시원치 않은 놈이 돈만 올려달라고 한다”며 “내가 하겠다”고 해버린 것이 시초였다. 

“가수가 두고 간 기타로 내가 노래를 시작했어. 그때 내가 부른 게 포크야. 포크는 우리나라에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나는 작은 누나가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면서 오래된 악보 200개 정도를 보내줬다고. 그게 포크인줄도 모르고 엘비스의 ‘러브 미 텐더’같은 노래들을 나 나름대로 섭렵을 한 거지. 지배인이 노래를 한다고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더 왔어.”

당시에는 통금이 있어서 11시면 빗자루로 먼지를 풍기며 손님을 내쫓던 게 지배인의 역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비질을 하는데 구봉서 씨가 서영춘 씨와 유명한 쇼 단장을 데리고 카페에 들어왔다. 

“통금이 다 됐는데 맥주 한 호프씩만 먹고 간다는 거야. 유명인이 들어오니까 나도 흥분을 해서 그러라고 했지. 구봉서 씨가 구석에 있던 내 기타를 보고 ‘나 좀 치면 안 될까’ 물어. 구봉서 씨가 원래 아코디언 연주자 출신인데 기타도 잘 치더라고. 곡이 끝나기에 신나서 박수를 쳤지. 그랬더니 너도 오래. 그래서 기타를 가지고 같이 놀았더니 ‘너 이거 포크송 아니냐’ 물어. 그리고는 ‘내일 다시 올게’ 하고 갔어. 다음날 MBC와 TBC의 유명한 쇼 프로듀서 둘을 데리고 와가지고는 가수로 나를 추천했어. 그렇게 다음 주부터 가수가 됐어.”
 

도망자 신세가 된 라디오스타

가수가 되고 TBC의 ‘쇼쇼쇼’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을 했다. 조영남과 트윈 폴리오 등 지금은 스타로 기억되고 있는 가수들이 당시에 서 권사의 백코러스를 했다. 서 권사는 무대에서 밥딜런의 블로윈 인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개사해서 불렀는데 가사가 기가 막힌다.

“학교 앞에 책방은 하나 대폿집은 열. 이게 우리 대학가에요. 학교 앞에 책방은 하나 양장점은 열. 이거 정말 나를 웃긴다. 가르치는 교수님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아. 내 친구야 묻지 마라. 너도 몰라. 나도 몰라.”

당시 대학가의 풍경을 풍자한 노랫말은 큰 화제가 됐다. 서 권사의 어머니와도 친분이 남달랐던 이화여대의 김옥길 총장은 “니가 이대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하냐”고 혼을 냈고 김 총장의 동생인 김동길 선생(연세대 명예교수)은 “유석이 말이 정확하지. 누님은 왜 뭐라고 하냐”며 젊은 서 권사의 편을 들었다. 

그의 이런 사회 비판적인 시각은 라디오 진행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동양방송에서 ‘잠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할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독재정권과 미국을 욕하는 그에게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는 그를 끌어 내리고 싶어서 예의주시하던 차였다. 월남파병의 찬반 여론이 가장 첨예하던 때, 미국의 러스크 국무장관이 파병 압력 차 서울을 방문한 날이었다. 그는 국제합동통신 UPI에 소개된 전쟁의 참상을 담은 기사를 그대로 읽었다. 

“방송이 나간 뒤에 피디가 얼굴이 허예져서는 얼른 도망가라는 거야. 잡으러 온다고. 그런데 통금 시간에 어디를 가. 길 건너 24시간 사우나 간판이 보이기에 냅다 들어갔지. 그길로 사흘을 거기 숨어 있었어. 이후에 방송국 부장이 끌려갔다 어쨌다 말이 들리더라고.”

당시 언론사마다 중앙정보부에서 파견한 조정관이 한 사람씩 상주했는데, 다행히 동양방송 조정관이 대학 선배였다.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을 친 그는 대전으로 갔다. 거기에서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생맥주 살롱을 내고 그 돈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는 세월’로 화려하게 복귀

그 와중에 ‘키보이스’의 김광정이라는 맴버가 곡을 쓰고는 “이 곡은 서유석이 불러야 한다”고 연락을 해왔다. 야밤에 서울로 몰래 와서 여의도 관광호텔에 가서 곡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나온 곡이 ‘가는 세월’이다. 서 권사는 뉴스가 시작하는 저녁 8시가 되면 매일 가게에서 기타를 들고 ‘가는 세월’을 불렀다. 

“대전 사람들이 가는 세월을 다 외워버렸어. 거기 사람들은 내가 가수인줄은 잘 몰랐고 카페 사장이 부른다고 유명해졌지. 그러다가 서울에서 대마초 사건이 터졌어. 하루아침에 가수들이 다 잡혀 들어가니까 TV에 세울 사람이 없네. 최고 인기였던 음악프로가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이 소주집으로 가고 거기서 정부 비판만 한 거지. 박정희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는 가요프로를 살리라고 명령을 했어. 결국 중앙정보부 애들이 나더러 올라와서 활동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

자존심에 6개월을 버티다가 레코드사 사장의 읍소로 TV 출연을 결정한다. 그간 갈고 닦은 ‘가는 세월’을 세상에 선보이자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별표 전축 시대에 LP가 100만장이 나갔다. 대기록이었다. 

그러나 정작 서 권사는 자신을 ‘가수’가 아닌 ‘방송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 라디오에서 당시 송해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아성에 도전해 6개월 만에 청취율을 따라잡은 대목을 이야기 할 즈음에는 그의 목소리도 한 키 이상 올라가 있었다. MBC ‘푸른신호등’의 진행을 맡아 1996년 총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무려 18년을 쉼 없이 진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돈임에도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대차게 낙선했다. 

“DJ한테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국회의원은 내 길이 아니야. 그만 가길 잘했지. 그때 의원 배지 달았으면 초선에 뭘 알았겠어. 기존 세력에 이용당하고 팽당할 걱정 하나, 내 맘대로 안 됐을 때 내 성질에 의원 생활 오래 못했을 거 같아. 떨어진 게 약이 아닌가 생각해.”

방송이 끝나고 침체된 그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닌 교회였다. 찬송가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해서 불렀고, 자신의 노래 가운데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곡들을 불렀다. 교회마다 ‘가는 세월’은 꼭 요청한다고. 놀랍게도 ‘가는 세월’에는 전도서 1장 2~11절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서 권사는 해당 구절을 줄줄 읊고는 “이제는 그 의미를 다시 해석하며 부른다”고 말했다.

가수 서유석 권사가 오는 12월 17일 정동제일교회 벧엘관에서 서유석의 송년음악회를 개최한다.
가수 서유석 권사가 오는 12월 17일 정동제일교회 벧엘관에서 서유석의 송년음악회를 개최한다.

한편 그는 오는 12월 17일 정동제일교회 벧엘관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송년음악회를 연다. 남북평화재단 산하의 캠페인 ‘좋은친구들’ 홍보단장을 맡은 그는 “다른 단체에서 돈 주고 하려고 해도 못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공연에는 홍콩 국제 아카펠라 경연대회 준우승에 빛나는 ‘MTM중창단’과 지난해 카네기홀 2회 공연을 한 이혜영 오카리나 연주자, 7080 메들리를 부를 ‘포크패밀리’가 출연한다. 서유석 권사도 ‘가는세월’을 비롯한 히트곡을 선사할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