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의 전지현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그녀의 독립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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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의 전지현보다 더 드라마 같았던 그녀의 독립투쟁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11.26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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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그들이 꿈꾸었던 조국,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35)무장투사 남자현

47살 늦은 나이에 무장투쟁에 헌신
독립군들 도우며 암살 작전에 투입
교회를 통한 여성 계몽운동에 앞장

 

남자현 지사.
남자현 지사.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은 남자현 지사. 
그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분한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남 지사는 ‘안옥윤’으로만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인물이다. 남 지사가 순직한 뒤 하얼빈의 독립운동가들은 그를 ‘독립군의 어머니’로 칭송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던 남 지사의 삶을 따라가 봤다.

독립군의 어머니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무렵’은 세상의 편견에 스스로를 감추고 살았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성의 자각과 변화, 그러면서도 어머니 특유의 모성은 잃지 않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번에 남자현 지사에 대해 조사하면서 드라마 속 ‘동백이’가 떠올랐다면 무리일까. ‘무장투사’로 분류되는 남 지사는 1872년 경상북도 영양군(추정)에서 1남 3녀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지역의 교육자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남다른 총명함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7세에 국문에 능통했고 소학과 대학을 통달했다고 전해진다. 

19세 무렵 아버지의 제자였던 김영주와 결혼해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으나 남편은 1896년 7월 11일 홍구동 전투에서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남 지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린 아들과 시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명주실을 직접 짜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20년 가량의 시간이 흘러 시어머니 사망 후 삼년상을 치른 그는 서울로 올라가 3.1운동에 참여한다. 그때의 결심으로 남 지사는 장롱 속에 넣어뒀던 남편의 피 묻은 옷을 간직하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그 때 그의 나이 마흔 일곱. 오늘날의 기준으로 노인이나 다름없을 고령에 속했지만 그는 스스로 강인한 투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만주로 망명한 뒤 아들을 신흥무관학교로 입학시키고, 자신은 독립군 부대 서로군정서의 일원이 된다.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상병의 간호를 담당하며 일본군에 맞섰다. 이때부터 그녀에게는 ‘독립군의 어머니’라는 호칭이 붙었다. 
 

세 번의 단지

남 지사는 스스로 세 개의 손가락을 자른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손가락은 독립군 내부에서 분파가 생기고 그들끼리 마찰을 빚자 7일간 금식기도를 한 뒤 잘랐다. 그리고는 흐르는 피로 혈서를 작성해 간부들에게 통합을 강변했다. 

다음은 1923년 이었다.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서 회의가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지지부진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잘라 민족의 통합을 호소했다. 

마지막은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일본의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였다. 남 지사는 조사단 대표 리튼에게 보낼 혈서를 위해 세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왼손 무명지 2절을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고 적어서 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전달했다. 그의 이같은 단지는 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일본에 속지 말 것을 호소하기 위한 행위였다. 역사가들은 훗날 안중근 의사가 남 지사의 이같은 용기에서 영향을 받아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썼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영화 암살의 스틸샷. 주인공 안옥윤은 남자현 지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여성 무장 독립운동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남 지사의 실제 이야기는 극 중 안옥윤과 많이 다르다.
영화 암살의 스틸샷. 주인공 안옥윤은 남자현 지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여성 무장 독립운동가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남 지사의 실제 이야기는 극 중 안옥윤과 많이 다르다.

 

교회를 세우다

남 지사는 남만주에서 북만주로 가는 도중에 기독교 신자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향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믿음을 가지게 됐느냐보다 중요한 사실은 무장투쟁을 벌이다가도 전투가 없을 때면 북간도의 각 마을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세운 것이다. 특히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설립하여 여성과 어린이 교육을 맡겼다. 

고신대의 강진구 교수는 “남자현 지사의 생애는 현대를 사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사명감을 부여한다”며 그 의미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신앙과 나라 사랑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준다는 것. 강 교수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주재하시는 분이지만, 한 개인과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기도 하다”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나라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세상의 공의를 실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12곳에 교회를 세운 사실이다. 강 교수는 “인생과 국가의 문제에 있어서 신앙이 기본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남 지사가 여성 계몽운동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강 교수는 “신앙으로 교육받은 여성은 남성이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거행한다”며 “약자가 보호받고 여성이 교육을 받는데 소홀함이 없으며 여성지도자를 세울 줄 아는 사회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남 지사는 61세이던 1934년 일본전권대사 무토노부요시 암살에 가담하지만 실패한다. 치마 속에 무기를 감추고 왜적을 제거하고자 숙소인 영사관 구내까지 당도했지만 거사 일보 직전에 탐정의 밀고로 붙잡힌 것.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인 그는 사경에 이르렀고, 보석 석방 후 며칠만에 숨을 거뒀다. 남 지사가 서거하자 당시 하얼빈 사회유지와 부인회, 중국인 지사들은 깊이 애도하며 고인을 하얼빈 남강외인묘지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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