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구에 8평 남짓…필리핀 철거민에겐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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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구에 8평 남짓…필리핀 철거민에겐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11.22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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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를 향해 뛴다 - 필리핀 로드리게스 철거민 사역하는 허성재 선교사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는 중계동 백사마을엔 산업화시대 강제철거민들의 상처가 서려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이야기일 줄 알았던 강제철거의 아픔이 필리핀에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도 마닐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시 로드리게스에서 철거민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허성재 선교사(63)를 지난 5일 만났다.

눈부신 개발 뒤에 어두운 그림자는 한국이나 필리핀이 다르지 않았다. 마닐라를 제2의 마카오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에 집을 빼앗긴 철거민들은 사정없이 외곽으로 내몰렸다. 카지노와 쇼핑센터라는 거인에 집을 내주고 로드리게스로 쫓겨난 철거민들의 수는 무려 20만 가구에 이른다. 한국으로 따지면 광역시 규모에 육박하는 인구다.

하지만 로드리게스 철거민들의 상황은 한국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5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필리핀으로 향했던 허성재 선교사 역시 처음엔 코피노 아이들을 위한 사역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인 선교사의 소개로 로드리게스 지역 철거민들을 만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쫓겨난 주민들은 가구당 8평 남짓한 방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전염병에 대책 없이 노출돼 있었고 작은 상처도 치료할 약이 없어 고름을 달고 사는 상황이었죠. 생계를 위해 남자들이 일하러 나가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마을에 남은 여자들은 도박과 알콜 중독에 젖어있었습니다. 도저히 이곳을 그냥 두고 돌아설 수 없었어요.”

그렇게 아내인 한영순 선교사와 함께 로드리게스 철거민촌에 뿌리를 내린 것이 벌써 8년 전. 자리를 잡고는 가장 시급한 의약품부터 들여와 현지인 의사의 자문을 받아가며 약을 공급했다. 하지만 처음엔 아무리 약을 발라도 도무지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기초 영양이 너무도 부족했던 탓이었다.

기초가 잡혀있질 않다보니 약이 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료약을 내버려두고 종합비타민과 영양제부터 처방했더니 보름 만에 낫더군요. 그만큼 주민들의 건강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육체적인 문제도 심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영혼의 문제였다. 악취가 가득한 동네, 자기 개발을 위한 시설이라곤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선 꿈과 비전은 다른 나라 이야기 같았다. 주민들은 오직 술과 도박에서 낙을 찾았고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전혀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 상황이었다.

가난의 고리를 끊을 길은 교육뿐이었다. 먼저 교회를 세우고 아이들 중 장학생을 선발해 어떻게든 학교를 보냈다. 처음 장학생에 선발됐던 아이들은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임시교사로 취직해 고향에 돌아왔다. 임시교사로 받는 월급은 한화 40~50만원 상당. 대부분 주민들이 막노동으로 버는 금액의 3배에 달하는 액수다. 교육받은 아이들이 성공해 돌아오자 학교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빛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절대 잊지 못할 아이도 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 못해 게이 삼촌의 집에 맡겨졌던 여자 아이였다. 매일 게이들이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그곳에 도무지 아이를 둘 수 없다고 생각한 허성재 선교사 부부는 즉각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취직까지 성공한 그 아이는 첫 월급을 모두 털어 양손 가득 허 선교사 부부를 위한 선물을 들고 왔다. 허 선교사 부부는 그 아이를 수렁에서 건져낸 딸이라 부른다.

교회의 장년 성도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한 가정 한 걸음이라 이름붙인 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게 꿈을 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돕기 위한 사역이다. 먼저 주민들에게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을 적게 한 뒤 가구의 상황과 의욕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겼다.

주민들의 소망은 대부분 문방구, 미용실, 음식점 등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것. 한국이었다면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했겠지만 철거민촌에선 조금의 도움만 있으면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중국에서 사역하던 김경배 선교사가 하늘로 떠난 후 김옥자 사모가 후원한 중국돈 3,000위안을 종자돈으로 본격적인 한 가정 한 걸음사역을 시작해간다는 계획이다.

주민들이 저희 집에 와서 가족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부러워하더군요. 60이 넘어 이곳을 얼마나 오래 섬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민들이 일용할 양식을 해결하고 다시 꿈을 찾아 생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겁니다. 부디 한국교회도 과거 우리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필리핀 철거민들을 위한 기도와 사랑을 보태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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