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죄인을 구원하는 은총의 종교다
상태바
기독교는 죄인을 구원하는 은총의 종교다
  • 민경배 박사(백석대학교 석좌교수)
  • 승인 2019.11.12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혁주의생명신학과 다음세대-생명신학의 프로토 (누가복음 9:10~17) ②

광야에 온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곤비하시고 지치셨는데도 반가이 영접하실 정도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간절히 예수님을 믿고 따르려고 먼 길을 온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더러는 구경삼아, 한번 모습 보려고 휩쓸려 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인데도 주님께서는 반가이 맞아주셨습니다. 주님 뵈올만한 진지한 사람들이 아닌데도 두 손 벌리시고 환하게 영접하시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완전할 때만 영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나병환자들, 죄인, 세리,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여인네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식사도 하시고, 함께 마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꺼려지던 존재들입니다. 문제는 주님이 그들을 다 깨끗하게 씻겨주고, 고치고 회개하게 하고, 그래서 누구에게나 존경받고 사랑받을만한, 가까이 하고 싶을 정도로 말쑥한 청정상태, 무균상태로 만들어 놓고 나서 만나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고 밉고 허물이 많고 더러워도, 반기고 영접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러 오신 분이십니다. ‘내 모습 이대로’ 만나고 반기고 안아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기독교는 업적과 스펙, 인과의 종교가 아닙니다. 은총의 종교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소박한 일상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개혁주의신앙의 근간입니다. 기독교는 수도원의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만 머무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광수는 1917년 25세의 나이에 아담 스미스나 막스 베버에 버금가는 대단한 말을 남깁니다. 곧 목사만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농부도 군인도 사무원도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주일만 하나님의 날입니까. 화요일도 목요일도 하나님의 날입니다. 여기서 성속의 이분법은 사라집니다. 창조론에서 보았을 때에는 세상 것이 다 신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기적은 한 어린아이가 가진 오병이어, 그것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육신의 요구들, 먹는 것, 입는 것, 직장, 하찮은 인간관계, 그런 것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부활하시고 처음 제자들을 만난 곳이 갈릴리 호수인데, 주님께서는 미리 다 먹을 것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빵을 준비하시고 생선을 구우시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활 후 제자들 모인 방에 들어오셔서는 ‘여기 뭐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묻고 계셨습니다. 


기독교는 실상 실제와 현실의 문제에 시종합니다. ‘신학은 학문이 아니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학은 이론이고 이론은 추상입니다. 추상은 시공을 초월하여야만 진리입니다. 실제의 여기 시간과 장소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추상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실상과 실체, 현실에 시종합니다. 요한1서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있는 것처럼 목격하는 것, 그런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의 문제에 당면합니다. ‘일용할’ 문제들에 대응합니다. ‘세어볼’ 수 있는 문제들과 맞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