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은 시민적 저항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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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시민적 저항의 산물
  • 이정배 원장
  • 승인 2019.11.05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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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원장/현장아카데미

최근 이 땅에서 청년들 중심으로 ‘기본 소득당’이 실험 중에 있을 정도로 본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사업구조의 변화로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청년실업이 급증한 탓에 토론되고 있으나 기본소득은 단지 청년뿐 아니라 농민들, 장애인, 주부 모두에게 해당될 사안이다. 특별히 한국적 현실에서 경제적 비상상태(비정규직, 조기 퇴직, 강제실업 등)가 예외적이지 않고 그것이 일상이 되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법, 교육영역에서 공정성이 상실되었기에 정의에 대한 시스템적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기본소득’은 정의를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한 방책이 될 수 있다. 단지 나라가 수여하는 복지 차원이 아니라 애초부터 인간의 자기 권리차원에서 설계, 입안, 시행되어야 할 정책인 것이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정책과 다른 것은 기여 및 고용조건과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태어난 이상 인간으로서 살 권리에 대한 보장인 까닭이다. 존엄한 인간이 잉여적 존재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한 시민(민중)적 저항의 산물이겠다. 더더욱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점에서 ‘기본소득’은 다음처럼 정의되곤 한다. “자산여부, 노동에 대한 요구 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돈” 즉 ‘기본소득’은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 충분성, 현금성, 무한성을 원칙 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가 금과옥조로 삼았던 ‘사유재산’의 신성함이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신학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는 공유자산에 대한 각성이겠고 경제학적으로는 피케티가 말하듯 ‘사유공유재산’이란 역설적 새 개념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어떤 사회제도도 영원할 수 없다는 시각에서 과감하게 자본주의를 넘어 ‘참여적 사회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자산’이란 급진적 개념을 내걸 만큼 사유재산제도의 효력을 상당부분 정지시키고자 한 것이다. 주지하듯 사유와 공유를 함께 묶는 새 개념 “사유공유재산”이란 일정금액 이상의 사유재(자)산에 대한 엄청난 누진세(90%)에 근거하였다. 누진세 강화를 통해 기업 사유화를 막고 기본자산을 지닌 소액 주주들로 이사회를 구성(1/2비율)하는 ‘참여사회주의’가 불평등 해소를 위해 피케티가 생각했던 ‘기본자산(본)’의 얼개이다.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아직 낯선 생각(緣木求魚)이겠으나 사회주의 사유전통에 익숙한 프랑스의 경우 성서의 기본생각을 제도적으로 실천하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를 사회주의로의 퇴행이라 여기며 저항하는 세력이 많아 그 실행이 이 땅에서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앞선 생각을 근거로 이 땅에서도 구체적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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