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주도하는 ‘생명’ 백석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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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를 주도하는 ‘생명’ 백석으로부터 시작된다
  • 민경배 박사(백석대학교 석좌교수)
  • 승인 2019.11.05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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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생명신학과 다음세대-생명신학의 프로토 (누가복음 9:10~17) ①

1. 개혁주의생명신학은 세계사의 핵심주제
세계역사는 시대마다 그 주도 동력이 변천해 왔습니다. 초대 그리스에서는 신학으로, 중세 로마에서는 교회로, 근대 독일에서는 신앙으로, 근현대 영국에서는 실용으로, 역시 근현대에는 미국에서 복합으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한국에서 그것이 생명으로 프레임을 바꾸어 왔습니다. 현대의 이 ‘생명’ 구도를 천명한 것이 우리 백석 장종현 설립자이십니다. 그의 공헌은 이 생명 주축의 개혁주의생명신학을 기독교의 거대한 세계비전으로 천명하고 그 현대적 실체를 기독교의 현대적 실상과 그 위상으로 정립하는 대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생명신학의 근거, 그 이미지의 프로토 원상을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하나 더듬을 수 있다고 봅니다. 

2. 주님, 사람을 영접하시는 모습
기독교는 세계의 저 변두리 유대 나라, 그것도 저 벽지 나사렛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 그분의 복음이 오늘 세계에 이처럼 널리 깊이 파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기껏 3년 간의 활동으로 세계 최대 정신적 에너지와 생명으로 역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우스 쥬리우스 로마황제가 소리 높여 외침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결국 이기셨습니다”처럼 말입니다. 

그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해답이 하나 이 오병이어의 사건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을 그렇게 소중하게 아끼고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당시 거기 모인 사람들은 남자만 5천 명이었고, 따라서 남녀노소를 다 합치면 2만여 명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입국 당시 서울의 인구가 10만 정도라고 한다면 이만한 수는 당시로서는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친 주님 스스로가 그때 몹시 곤비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삶은 겹친 일정과 걸음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곧, 그때에, 또, 다시, 이어서, 이런 식이었습니다. 스스로도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하신 일이 있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부러워하셨고 산속의 여우조차 굴이 있어 쉴 때 쉰다고 하셨습니다. 언젠가는 배 타고 가시는데 풍랑이 일어나 배가 전복될 지경이라 다들 죽게 되었다고 소리치는데도 우리 주님은 너무 고단하셔서 배 밑 고물을 베고 계속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도 주무시냐고 소리쳐 깨운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힘들고 아파서 때로는 울기도 하셨습니다. 

그때 광야에서는 주님과 제자들이 모두 피곤하였습니다. 마침 제자들은 오랜 전도여행에서 돌아왔고, 세례요한도 목 잘리고, 또 그때가 유월절 행사로 전국이 민족이동을 하며 아주 번잡한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배를 띄워 쉬려고 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숫가 저편에 먼저들 몰려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저희를 영접” 하시었습니다. 목자 없이 길 잃은 양들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병 고칠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먼저 우리를 손 벌려 맞이하시고 반가이 안아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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