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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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첫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19.10.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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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인생의 자본 / 데살로니가후서 3:6~12 / 찬송: 446

모든 일에 자본이 필요하듯이 인생의 삶에도 자본이 요구됩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인생의 자본론을 두 가지 측면에서 교훈합니다. 과연 바울 사도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교훈한 삶의 밑천은 어떤 것입니까?

질서있는 성실한 생활입니다. 본문 67절 그리고 11절에 세 번씩이나 강조적으로 채용된 규모없이 행하고란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인중의 어떤 이들의 무질서한 생활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께서는 규모있는 성실한 생활을 질서로써 교훈합니다.

영적 질서를 따르는 생활이 인생의 자본임을 밝힙니다. 말씀의 교훈은 곧 영혼을 살리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육체의 세계만 중시하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는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위한 질서를 파괴합니다. 이는 인생의 중요한 삶의 밑천을 상실하는 영적 무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하듯이 영혼이 잘 되도록 영적 생활에 힘써야만 됩니다.

우리의 삶의 자산이 무엇인가 명심하십시다. 성실과 진실만이 성공적 삶의 밑천임을 확신하십시다. 그러므로, 질서를 존중하는 성실한 태도로, 자립을 소망하는 진실한 자세로 더욱 매진하십시다.

오늘도 성실과 진실의 떡을 먹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인생의 자본은 성실과 진실뿐임을 깨닫고 주 안에서 정직하게 하소서.

임요한 목사 / 인천한영교회

 

화요일/ 무한 감사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찬송: 478

네 무지를 알라!’고 가르쳤던 인류의 큰 스승, 소크라테스가 있습니다. 그런 소크라테스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그의 제자 플라톤의 감사의 고백입니다.

나는 세 가지를 감사한다. 첫째는 내가 아테네에 태어난 것이요, 둘째로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보다 더욱 감사할 일은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태어나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난 것이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해 모든 사건을 감사하며 받아들일 때 우리 삶에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감사는 용사(勇士)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법입니다.

감사는 겸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처럼 겸손하게 우리의 가슴 가득히 감사의 은혜를 채워봅니다.

죄인된 우리네 인생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감사는 위대한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감사로 충만하여 진리의 사랑으로 가득찹니다. 진리의 사랑 가운데 무한 감사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게 하소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감사로 충만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장현승 목사 / 과천소망교회

 

수요일 / 가룟 유다의 선택 / 마태복음 27:3~5 / 찬송: 341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선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로 부름 받은 것이 오히려 가룟 유다에게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길 때의 마음에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불평불만 없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마귀가 틈탈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불평불만을 많이 하던 자들에게는 언제든지 마귀가 틈탈 기회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활은 주님의 제자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긴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을 때에도 ‘....스스로 뉘우쳐...’(27:3)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끝내 스스로 뉘우치고 물러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27:5) 인간의 생각으로 아무리 옳은 결정을 했다하더라도 제자의 도리를 벗어난 행동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다고 하면 주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꾼들로 항상 승리하게 하옵소서!

주철순 목사 / 창일교회

 

목요일 / 지붕까지 뜯어야 했을까? / 마가복음 2:1~12 / 찬송: 543

오늘 말씀은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내려보냈던 네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왜 지붕까지 뜯어야 했을까요?

첫째로, 이 중풍병자의 문제가 절박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침받을 수 있는데,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신세입니다. 그래서 네 사람이 힘을 합쳐서 지붕을 뜯어낸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중풍병자의 처지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가족이나 친구가 이 중풍병자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누구라도 당연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지붕까지 뜯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둘째로, 예수님만 만나면 고침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신 주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믿음있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붕을 뜯을 때에 비로소 믿음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보시고그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불신의 지붕을 뜯어야 합니다. 때로는 모욕도 감수하고 손해도 감수하고 지붕을 뜯어야 합니다. 지붕을 뜯는다는 의미는 바로 우리의 믿음을 주님께 보여 드린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수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을 때,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지붕을 뜯는 믿음이 있게 하옵소서 아멘.

문강원 목사 / 원천교회

 

금요일 /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 신명기 4:1~4 / 찬송: 450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하면서 왜 믿음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의 구조는 어떤 일이든지 그 시작은 쉽고 편할 수 있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 마무리하는 것, 확장시키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쉬운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도 세월이 지나면서, 꿈이 더 크게 발전하고, 구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단순한 희망은, 극심한 고통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처음부터 거대한 목적의식과 목표 아래 있었다면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분노하며, 하나님 앞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삶의 크기는, 광야 연단을 지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더 커지고 확장된 것입니다. 우리 삶에 축복의 뿌리가 내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시간도 필요한 것입니다.

광야의 시간은 처음부터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많은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었습니다. 축복의 삶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편하고 쉽게 내 마음대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집중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격과 소망을 놓치지 않고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축복의 내일을 기대하며, 받은 은혜 감사하며 승리하게 하소서.

유용원 목사 / 한승교회

 

토요일 / 기도 떠난 겸손은 존재하지 않는다 / 마가복음 14:32~42 / 찬송: 406

예수님은 우리가 연약함 가운데 넘어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 깨어있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적용 가능한 시간을 제시 하십니다. 한 시간 동안도 깨어서 있을 수 없더냐.’ 여기서 우리는 한 시를 짧은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원문을 보면 한 시간입니다. one hour, 한 시간 동안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욕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도 없이 일하다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부인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31절을 보면 그때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모든 제자들이 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의욕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의 실력 없이는 어떠한 승리도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만을 꺾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현장 속에서 우리 삶에 만만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절대로 만만한 것이 아니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기도 없는 열심은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를 떠난 겸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사 의욕만이 아닌 겸손하게 삶의 난제들을 기도로 풀게 하옵소서.

이석원 목사 / 제자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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