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묵상할 때에 문화적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상태바
본문을 묵상할 때에 문화적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 김진홍 목사
  • 승인 2019.10.22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 (31)

문화라는 말은 그 당시의 역사와 같은 맥락을 하고 있다. 역사에 따라서 문화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의 문화에서 본문이 기술되었나를 깊이 묵상해야 오류가 없다.  

성경은 그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문화적 관습을 이해해야 한다. 성경 당시의 역사와 문화로 돌아가서 그 시대에 주어진 말씀의 본래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신구약 성경의 배경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 성경 본문은 특정한 시대에서 기술이 되었다. 성경 본문은 그 본문이 위치한 바로 그 시대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루터는 이런 말을 했다. “훌륭한 성경교사는 성경 본문에 의견을 더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 본문에서 의견을 끄집어내는 사람이다” 많은 분들이 본문을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도록 해석할 때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결코 적절한 성경 연구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본문에서 올바른 저자의 의도와 이유를 끌어낼 수 없게 된다. 반대로 본문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 때에 바른 성경 해석에서 올바른 묵상으로 접할 수 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문화와 오늘날의 문화의 차이는 성경을 묵상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경의 문화적 환경이나 우리의 문화적 환경을 인정해야 한다. 그 둘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곡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구약의 3,500년 전의 문화가 오늘과 같을 수는 없다. 신약의 2,000년 전의 문화가 오늘과 같을 수 없다. 성경을 기록한 시대와 성경을 읽는 우리들 사이에 오랜 시간의 격차가 있다. 성경의 어떤 사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의 형편을 알아야 한다. 

충청도 문화와 경상도 문화가 다르다. 전라도 문화와 제주도 문화도 다르다. 북한 문화와 남한 문화도 다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데 다른 나라이면서도 시간의 차이가 많이 난다면 어찌 역사와 문화가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다르다. 당연히 다르다. 그 다른 것이 왜 다른 것인가를 바르게 알아야 바른 묵상을 할 수 있다. 오늘과 그 당시와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성경의 용어나 행위의 뜻을 심각하게 곡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신약성서의 문화적 배경에서 가장 영양을 미친 것은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이다. 헬레니즘이란 그리스의 문화사상으로서 유다인의 문화, 종교사상인 유다이즘과 더불어 유럽문화에 큰 영향을 준 사상이다. 이런 문화를 알고 본문을 묵상할 때에 바르고 깊은 설교로 나아갈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