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묵상할 때에 신학적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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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묵상할 때에 신학적 배경을 생각해야 한다
  • 김진홍 목사
  • 승인 2019.10.15 0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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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목사의 ‘목회와 설교’ (30)

성경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의 배경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신학이라고 하는 일정하게 형성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더 나아가 그 당시의 문화라고 하는 배경 아래에서 쓰였다. 역사와 신학, 그리고 문화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이해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신학적 배경이 없는 성경해석이다. 즉 원문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풀어서 해석하거나, 앞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을 본문을 통해 주장하는 해석이다. 이런 경우 아무리 설교가 은혜로워도 신학적인 문제를 낳게 된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이나 혹은 가정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구가 걸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대해지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욥기 8장 7절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의 성공을 무조건 보장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욥기의 문맥을 살펴보면 8장 7절이 앞의 본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이다. 6장에서 욥은 빌닷을 포함한 자기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 (욥 6:29,30)

이렇게 자기 의로움을 강변하는 욥에게 빌닷은 크게 분개한다. 그가 보기에 하나님은 결코 심판을 굽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의 죄나 자녀들의 죄의 결과라는 것이다. 욥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빌닷이 보기에 욥은 먼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창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빌닷의 이러한 생각과 말은 아주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이런 말을 한 빌닷과 엘리바스와 소발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 번이나 그들의 말이 정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당하지 않다고 선언하신 것을 하나님의 약속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너무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묵상 할 때에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천교회 담임 
금천설교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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