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쓴 기사]교회가 24시간 문 열어놓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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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쓴 기사]교회가 24시간 문 열어놓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10.14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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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에 찾은 도심 교회들…대예배당 문은 닫혀있어
절도‧노숙인 점거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가장 큰 장벽
사역적인 목적으로 열어두는 교회들 “교회라면 응당”
평일 낮 종로3가 인근의 교회들을 찾아가봤다. 세 곳 모두 대예배당은 굳게 닫혀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숭동교회, 중앙감리교회, 초동교회.
평일 낮 종로3가 인근의 교회들을 찾아가봤다. 세 곳 모두 대예배당은 굳게 닫혀있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승동교회, 중앙감리교회, 초동교회.

30대 직장인 A. 지난해 말 신도시로 이사한 뒤 인근 교회에 등록했다. 최근에는 교회 찬양팀에 합류했다. 그가 속한 찬양팀이 연습을 위해 토요일에 교회를 찾았다. 당연히 열려 있을줄 알았던 교회는 꽁꽁 닫혀있었다. 교회 부교역자들에게 연락을 해 문을 열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교역자 대부분이 이사 오기 전 교회 근처에 살고 있어 도착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모태신앙으로 평생 교회를 다닌 A는 의아했다. 자신이 다녔던 교회는 크지는 않았어도 낮 시간엔, 특히 토요일엔 대부분 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A씨의 이야기를 듣는데 불현듯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도심 한가운데 유독 가스가 살포돼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는 재난 현장을 담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옥상으로 향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굳게 잠겨 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 이 닫혀 있는 옥상이 한국교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적으로 병들어가는 세상에서 많은 영혼들이 교회의 문을 두드리지만 정작 교회 문이 닫혀 갈급한 영혼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상상이었다.

그런가하면 지난 달 서울 서초동에서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현장 인근에 위치한 사랑의교회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대형교회다. 문제는 이 교회가 집회 당일 참석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 출입을 막으면서 교회가 이래도 되느냐는 비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차주 집회에서는 교회가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대목이다.

영화 엑시트와 서초동 집회 속 사랑의 교회. 의식의 흐름이 나름의 맥락을 갖추면서 정말 교회들이 얼마나 문을 닫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문을 열어놓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직접 발로 뛰어봤다.

 

직접 걸어가서 열어봤다

지난 8일 종로3가에서 취재를 마쳤다. 4. 회사에 복귀를 해야할 시간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궁금증을 해소할 절호의 기회였다. 당장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교회를 검색했다. 지도에는 인근에 위치한 3개 교회의 정보가 떴다. 승동교회, 중앙감리교회, 초동교회. 모두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라 차례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먼저 승동교회를 향했다. 인사동 초입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고 계셨다. 모처럼의 좋은 날씨 덕분인지 인사동을 찾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를 지나서 골목길에 접어들어가니 길 끝에 승동교회가 보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 소속의 이 교회는 역사와 전통이 깊다. 총회는 지난 2017년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이곳을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1호 교회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렇게 상징적인 교회라면 문이 열려 있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품고 본당으로 향하는 계단에 올랐다. 그런데 예배당 문에 문닫혔음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문을 살며시 당겨봤지만 역시 열리지 않는다.

숭동교회 기도실.
승동교회 기도실.

계단을 내려가 경비실에 가서 여쭤보니 1층 기도실은 열려있다고 안내한다. 기도실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문을 열어보니 기도실보다는 작은 예배당 같은 모습이었다. 불이 은은하게 켜져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기도하기엔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말리는 사람도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교회를 빠져나와 인사동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다가 왼쪽으로 빌딩이 보인다. ‘하나로라는 간판 옆으로 중앙교회라는 글자가 쓰여 있어 이곳이 교회가 위치한 건물임을 알게한다. 기업체와 함께 건물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 교회 역시 감리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다. 1890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창립한 뒤 민족독립운동과 개화운동, 교육과 청년운동에 앞장서왔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이 교회 담임목사를 지낸 김창준과 박희도가 참여하기도 했다.

중앙교회 건물.
중앙교회 건물.

건물에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회가 사용하는 층까지 올라왔다. 로비까지 들어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문이 열려있는 예배당이나 기도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다른 층에 입주한 기업체들로 인해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추측을 하며 교회 건물을 빠져나왔다.

 

열어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더라

세 번째 목적지 초동교회는 인사동을 벗어나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쪽에 위치해 있다. 인사동에서 초동교회 방향으로 가는 길에 생경한 골목길이 나온다. 세상에, 이런 쪽방촌이 종로 한복판에 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골목 곳곳에 있는 표지판으로 보아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돈의동 쪽방촌이 이곳인 모양이다.

쪽방촌을 빠져나오자마자 높은 십자가 탑이 보인다. 건물 규모로만 보면 이날 방문한 3곳의 교회 가운데 초동교회가 가장 컸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임을 알려주는 마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뭔가 기대감이 들었다. 세 번째 교회여서인지 거침이 없다. 바로 교회로 진입했다. 로비에는 연세가 제법 있어 보이는 경비 집사님이 계셨다. 올해 77세인 송준범 집사님이다. 여쭤볼 필요도 없다. 데스크에 성함과 전화번호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집사님께 예배당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니 “3층 대 예배당은 닫혀있고 2층 기도실로 가라고 안내한다.

초동교회에서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송준범 집사. 올해 77살의 송 집사는 매일 새벽 3시 30분면 교회를 무단 점거한 노숙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고 했다.
초동교회에서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송준범 집사. 올해 77살의 송 집사는 매일 새벽 3시 30분면 교회를 무단 점거한 노숙인들과 실랑이를 벌인다고 했다.

사실은 취재차 방문했노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이내 하소연을 시작한다. 교회 경비업무를 보다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고 했다.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교회에 무작정 들어와서 잠을 자는 노숙인부터 취객, 무단주차까지 감당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별의 별 일을 다 겪으면서도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늘 열려있는 편이라는 게 송준범 집사의 설명이다. 2층 기도실을 열어둔 것은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잠시잠깐이라도 기도하고 가라는 배려다. 이따금 젊은 친구들이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기도 좀 하고 가겠다며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무슨 목사나 장로도 아니지만 편하게 긴장하지 말고 평상시 하는 대로 하라고 조언도 해준다고. 그러면 한결 얼굴이 밝아져서는 교회를 나가지. 그럴때 참 뿌듯해.

송 집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다. 여름이면 무더위쉼터를 개방하는데 본당 로비는 더울지언정 쉼터가 있는 선교관은 늘 에어컨을 가동한다. 과일이며 빵이며 수시로 가져다 놓는다. 재미있는 점은 하루에 커피믹스를 200개씩 배치해놓는데 정작 빈 커피봉투는 30개 정도밖에 안 나온다는 것.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간다는 소리다. 또 교회 1층 화장실 대변사로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노숙인이 들어가서 안에서 잠그고는 나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 아예 없애버렸다고 한다. 가장 충격적인 사연은 90살 넘은 권사님이 떡 맞은 이야기였다.

어떤 경우가 있냐. 우리가 주일이면 지하에서 식사를 하거든. 그런데 이게 소문이 나서 낙원상가며 종묘며 여기저기에서 노숙인들이 엄청 와. 어떤 사람은 5명씩 인솔해서 오기도 한다고.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밥 달라고 와서 생떼를 부리는 거야. 여기 90살 넘은 권사님이 봉사를 하는데 너무 곤란하니까 경찰을 불렀지. 40분을 승강이 한 끝에 내보냈는데 그 권사님 마음은 편하겠냐고. 미안한 마음에 떡을 가져다가 건넸는데 그 떡을 권사님 얼굴에 냅다 집어 던져버리더라고. 거기 있던 경찰도 나도 아주 황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그런 일이 태반이야. 여기 있으면

이런 일들이 있어도 이 교회 현관에서는 요즘도 많으면 23명씩 와서 잔다. 막걸리를 쏟아놓는 건 예삿일이다. 송 집사가 새벽 3시 반에 출근해서 조명을 켜면 떼가 덜 묻은 사람은 바로 일어나서 가는데 떼가 묻은 사람들은 상소리를 하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새벽 댓바람부터 치고 패고 싸우고 한다. 그래도 또 온다.

노숙자들 냄새가 나서 1분도 같이 대화하기 힘들어요. 우리교회 교인들 대단한 사람들이야. 이런 일들 다 겪고도 또 문 열어주는 일 쉬운 일 아닙니다.”

 

중장년 남성들을 위해 쉼터를 개방하고 있는 대조동루터교회.
중장년 남성들을 위해 쉼터를 개방하고 있는 대조동루터교회.

목사들은 열어두고 싶다

그런가하면 사역적인 목적으로 교회 문을 열어두는 곳도 있다. 강서구 양천로에 위치한 염창중앙교회(담임:김원선 목사)는 사무실과 사택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문을 열어놓는다. 시험 때가 되면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부한다고 온다. 물론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설립된 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 일을 이어오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지켜오는 법칙이라면서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교회를 방문했다는 것은 기도하고 싶다는 것인데 문이 닫혀있으면 곤란하다. 누가 어느 시간에 올지 모른다. 다만 관리 차원에서 교회 안에 사람이 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화재나 안전상의 이유로 탄력성을 갖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교회는 기도하고 찬양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은평구에 위치한 대조동루터교회(담임:최태성 목사)도 지난 2011년부터 교회 문턱을 낮추는 일을 시작했다. 교회 공간을 개방해 중장년들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남성들을 겨냥하고 있다.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 의자와 탁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바둑판과 장기판이 마련돼 있다. 그 옆에는 무료로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는 자판기도 설치돼 있다. 하루에 다섯 잔까지 마실 수 있다. 24시간은 아니다. 최 목사는 새벽예배를 마친 530분이면 기도실 문부터 열어둔다. 최 목사는 언젠가부터 교회는 늘 잠겨있는 공간이 됐지만 교회만큼은 주민들에게 늘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300원 하는 자판기 커피 한잔도 마시기 어려운 분들이 있다. 우리 쉼터에는 여유 있는 분들이 절대 오시지 않는다홀몸 어르신, 폐휴지를 줍는 분들, 노숙자 분들이 오간다. 매달 25만원 커피 값이면 된다. 교회는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교회문 못 여는 교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설움이 있다. 중랑구에 위치한 한 교회는 몇 해 전 교회 악기를 도둑맞았다. 고가의 장비들만 골라서 가져갔다. 지역사회를 향해 열려있는 교회를 표방했지만 남은 건 의심과 장비 재 구입에 따른 영수증뿐이었다.

뉴젠크리스천아카데미 원장 탁영철 목사는 목회자라고 하면 누구나 교회를 오픈해놓고 싶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다면서 핵심은 교회에 늘 누군가가 상주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도피성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명동성당이나 대부분의 사찰들은 승려나 신부, 수녀 등이 항상 상주하기 때문에 24시간 열려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탁 목사는 또 사실 한국교회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교회의 경우 목사들이 거의 주말에만 교회에 있기 때문에 문 열린 교회를 찾기가 더 어렵다사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소수의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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