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전쟁 그리고 평화
상태바
여성과 전쟁 그리고 평화
  • 김엘리 박사
  • 승인 2019.10.08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엘리 박사/성공회대 실천여성학전공 외래교수

분단사회에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멈추어 있다는 것.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것. 여행지 리스트에 넣을 수 없다는 것. 약 70년 동안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안보가 내부 사회를 통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

사회에서 ‘다름’은 안보 프레임 안에서 적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으로 쉽게 환원되고 오역된다는 것. 이모저모의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나올 수 있겠다. 이 글은 그중에서도 분단이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감정구조에 긴밀히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려 한다.

분단체제 혹은 분단질서가 지속되는 요인이자 효과이지만 주목받고 있지 못하는 요소가 젠더이다. 젠더가 제도와 구조, 일상의 실천, 의례 등 남성과 여성에 관한 모든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자 실천이며 역사적 사회적 범주라고 본다면, 분단 체제와 감정구조, 일상의 연결망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원리이자 실행으로서 젠더를 짚지 않을 수 없다.

군사화된 사회일수록 적대감은 한 사회의 정서구조에 깊이 배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70여 년 동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한 남한사회에서 적대감은 일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적을 상정하고 적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과정은 곧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이므로, 적대감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분인 셈이다. 불행히도 누군가를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부정적 경험 속에서 ‘우리’가 형성된다는 말이다.

최근 세계는 관용담론으로 집단의 차이와 갈등, 차별을 다뤄왔다. 차이를 인정하는 듯하나, 기존 규범을 균열시키는 차이들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놓고 사회적 차원으로 대두되지 못하도록 견제된다. 그러니 누가 포용되고 배제되며 동시에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구별은 곧 그 사회의 지배적 규범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러니 분단을 탈하는 방법은 꽤 지난하고 농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탈분단을 사유한다는 것은 남북한의 분단만이 아니라 남한 사회의 분단들·경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동시에 포착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틈에서 구조화되는 여러 감정들을 들여다볼 감수성-평화감수성, 젠더감수성, 인권감수성 등을 작동시키는 것을 만한다.

상황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이원화된 체제를 견고하게 하는 경계들은 이미 흐릿해지고 모호해지고 있다. 한민족 핏줄로만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민족들이 한국에 상주하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젊은 세대들은 다문화사회에서 태어나 글로벌 사회에서 산다. 또한 적과 아의 이분화된 거리를 경쟁과 전쟁으로 정복하여 아의 공간으로 타자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광장으로 변화시키려는 행위에서, 자기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남성들도 등장한다.

사람들은 모두 취약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상생적 의존이야말로 이원화된 체제를 넘어서는 삶의 방식임을 알 수 있다. 평화페미니즘은 이원화된 사유에서 탈주하는 삶의 양식을 기획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시민교육의 방향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면, 좀 추상적일까?

 

*본고는 지난 10월 1일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대화마당에서 발췌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