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하나님은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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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하나님은 들으신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10.04 2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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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격려는 신앙의 고백이다

지난 추석 때 일이다. 모처럼 만난 형님과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형제 간의 화목했던 대화는 밤이 깊어가면서 다소 침울한 분위기로 흘렀다. 최근 들어 형님네 사업장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나라고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형님의 입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분석만 들어서는 당장의 어려움이 쉬이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 일개 봉급쟁이가 무슨 대단한 조언을 해줄 수 있으랴. 그저 어설픈 위로 몇 마디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잘 될 거야”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고민이 나중에 가면 추억거리가 될 거야”

자리를 파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괜한 소리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TV를 봐도 SNS를 봐도 어설픈 위로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들 말하는 탓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겨우 꺼낸 위로나 희망찬 격려마저 못 할 짓이 되어 버린 것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책이 크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유행이 절정이던 때 온라인에서는 이 책의 제목과 내용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책의 저자가 겪었다는 젊은 시절의 아픔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의 엄살에 불과할 뿐이라는 분석이었다. ’흙수저’들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저자가 말하는 어려움은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어느 코미디 프로의 패러디는 많은 청춘의 공감을 얻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설픈 위로나 막연한 희망은 차라리 하지도 말라는 주장이 점차 대세로 굳었다. 교회에서는 또 어떤가 ‘기복신앙’과 ‘긍정의 신앙’은 엄연히 다름에도 ‘긍정의 신앙’까지 도매금으로 폄훼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추석날로 돌아가 보자. 이튿날 가족 예배에서 아버지는 민수기 14장 28절을 본문으로 ‘말의 힘’에 대해 설교하셨다. 본문은 이렇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출애굽 후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들은 입술로 죄를 범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처럼 광야에서 죽었다. 무서운 이야기다. 아버지께서 지난밤 형제간의 대화를 들으셨던 걸까. 뜨끔했다. 그리고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했던 위로가 어설펐을지언정 긍정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지금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입술을 통해 긍정을 뱉어야 한다. 혹여 그것이 어설플지라도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 된 우리의 어설픔마저도 사랑스럽게 바라보신다. 그리고 그것을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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