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군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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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군의 승리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10.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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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구스타프 아돌프스가 이끄는 스웨덴 군은 모범적이었습니다. 왕은 뛰어난 무장이었고 전략이 출중하였습니다. 그의 군사들은 전에 독일을 쳐들어왔던 다른 군대와 달랐습니다. 친절했고 주민들을 존중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교도나 칼뱅교도들에게 자기들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차츰 독일의 개신교 영주들은 그를 진심으로 원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힘은 점점 더 강화되어 갔습니다.


틸리가 이끄는 가톨릭 군은 스웨덴 왕을 지지하는 가장 큰 도시 막데부르크를 포위하고 함락시켰습니다. 살육이 벌어질 때 아무도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루터의 찬송을 부르며 행진했습니다. 


분노한 틸리는 그 어린이들 전체를 죽여 버리도록 명령했습니다. 도시의 모든 건물들은 일부 성당을 제외하고는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3만이나 되었던 인구는 4천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황제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개신교도들을 무섭게 단합시켰습니다. 가톨릭 앞에는 지옥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개신교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구스타브 아돌프스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모든 희망을 스웨덴 군사들에게 걸었습니다.


페르디난드 황제는 남쪽 삭소니의 무장 해제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삭소니 사람들은 명령을 듣는 대신 스웨덴 사람들과 합류했습니다. 구스타브 아돌프스는 남쪽으로 내려와 틸리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가톨릭은 참패하였고 사령관 틸리는 심한 부상을 입고 도주하였습니다. 


결국 페르디난드는 절세의 지휘관 발렌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발렌스타인은 황제와 전에 싸운 적이 있어서 좋은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와주는 조건으로 자기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독일의 통치자가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는 프라하를 점령한 개신교도를 몰아내고 신성 동맹(가톨릭 측)의 잔여 병력을 모아서 진군하였습니다.


1632년 11월 두 군대는 뤼첸에서 만났습니다. 스웨덴 군은 왕과 함께 주의 축복을 간구하며 루터의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불렀습니다. 전장을 덮고 있던 안개는 오전 10시쯤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적과 격돌하였습니다.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 양측은 무서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다시 안개가 끼어 적과 아군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적군들이 몰려와서 그를 보고 누구냐고 묻자 “나는 스웨덴의 왕이다. 오늘 내 피로써 독일 민족의 신앙과 자유를 보장한다.” 적군은 이 말을 듣고 총으로 그의 머리를 쏘았습니다. 이렇게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비보를 들은 스웨덴 군은 눈물을 뿌리며 더욱 분발하여 모든 힘을 다해 황제의 대군을 물리쳤습니다. 안개가 걷히면서 전장은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레스타인 군은 참패하였습니다. 스웨덴 군은 왕의 시신을 거두어 승리 가운데 왕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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