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상태바
용서
  • 양병희 목사
  • 승인 2019.10.01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병희 목사/영안교회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가 그린 ‘최후의 만찬’ 그림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다빈치는 그림을 구상하면서 가롯 유다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서 가롯 유다를 삼았다. 그다음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려고 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려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미워서 가롯 유다로 그린 친구를 찾아가서 내가 당신이 미워서 가롯 유다의 얼굴로 그렸는데, 나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고통하다가 찾아왔다고 하며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나서, ‘최후의 만찬’ 이라는 작품의 그림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자신의 마음이 상처가 많으면 창조적인 아이디어나 지혜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은전을 베푸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먼저 고통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한다. 용서 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다른 사람과 축복된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여 가슴에 멍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가? 먼저 용서하라.

그러나 용서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어렵지만, 용서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용서다. 죄의 담을 허시고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우리의 상처는 과거에 일어났다. 그러나 상처의 치유는 현재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용서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이다. 용서는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치료하고, 육체까지도 치료하는 능력이 된다. 용서는 자신이 사는 길이요 뒤틀린 관계를 회복하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남갈등으로 너무 분열되고 있다. 나와 생각이나 뜻이 다르면 무차별 공격한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남북 관계보다 남남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용서할 때 자신이 먼저 과거의 얽매인 고통에서 풀려나 미래로 나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 6:1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