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김치선 혁명할 수 있다”… 통합추진부터 ‘백석’ 흡수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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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김치선 혁명할 수 있다”… 통합추진부터 ‘백석’ 흡수로 인식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9.09.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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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에 반발하며 이탈한 구 대신측, 과연 정당한 명분 있나?
유만석 목사와 구 대신측 목사 등이 낸 탈퇴공고. 이탈자들이 백석총회 회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높다.
유만석 목사와 구 대신측 목사 등이 낸 탈퇴공고. 이탈자들이 백석총회 회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높다.

지난 19일 수원 라비돌리조트에서는 ‘제42회 백석대신 정기총회’가 열렸다. 명칭 변경에 반발한 구 대신측을 중심으로 교단 징계를 피해 탈퇴한 유만석 목사와 수원지역 교회 일부가 참여했다. 이들은 “백석대신총회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백석총회에서 탈퇴한다”며 모 일간지에 광고까지 냈다. 즉, 총회의 치리와 결의를 수용하지 않고 이탈한 것이다. 

같은 날 백석총회는 실행위원회를 열고, 41회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총회에서 결의한 ‘특별재심원’과 ‘예결산조사처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총회 정상화와 개혁에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해서 총회 치리를 피하고, 결의를 거부한 채 새로운 총회를 만드는 행위는 교회사 속에 나타난 한국교회 분열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총회를 탈퇴한 ‘이탈자’들이 백석총회 회기인 ‘제42회기’를 그대로 차용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탈자들이 백석대신총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대신 복구총회로 흩어지는 모습도 발견된다. 결국 이들에겐 ‘대신’이라는 명칭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이번 구 대신측의 이탈도 표면적으로는 총회 정상화와 15개항에 대한 불만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백석’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 가장 컸다. 2015년 통합 당시 백석은 약 5천여 교회, 구대신은 약 2천여 교회였지만 백석은 명칭을 내려놨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백석 총대들이 그동안 기득권을 포기하고 ‘대신’ 명칭을 받아들인 것처럼 구 대신도 ‘백석’ 명칭을 받아주면 안 되었을까? 대신을 쓰면 통합정신을 지키는 것이고, 백석을 쓰면 통합정신이 깨지는 것일까? 왜 그들은 탈퇴까지 하면서 강하게 반발한 것일까? 통합 추진과정을 통해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교단 통합, 누가 거짓말을 했나?
지난 23일 한기총 전광훈 대표회장은 자신을 제49회 대신총회장으로 밝히고, 대신인들 앞으로 오는 10월 17일 수원 라비돌리조트에서 ‘대신 제50회 복원총회’를 한다는서신을 띄웠다. 그가 밝힌 통합의 핵심적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저는 제49회 대신총회장으로서 증경총회장님들과 총회 여러분들의 뜻을 받들어 다음의 4개 항에 합의하여 공증까지 마쳤습니다. 4개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교단 이름은 대신으로 한다. 둘째 회기는 대신총회 회기로 한다. 셋째 백석신대원의 이름은 대신신대원으로 한다. 넷째 총대원은 5:5로 한다. 이러한 조건을 제49회 전 총회원들의 전원 기립박수로 추인을 받아 통합을 했던 것입니다.”

전광훈 목사가 서신에 밝힌 내용대로라면, 2015년 백석과의 통합은 백석이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대신에 백석총회를 상납하는 모양새다. 정말 4개항이 사실이라면 구대신 총대들이 배신감을 느낄만 하다. 4개항은 아무 전제조건 없이 ‘대신 명칭, 대신 회기, 대신 신학’ 등 대신에 모든 전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합의 첫 단추는 사실 여기서부터 잘못 끼워졌다. 백석은 명칭과 회기 등을 조건 없이 주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없다. 대신 지도부가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총대들을 호도하며 통합을 추진한 것이다.

지난 2014년 9월 18일, 예장 백석보다 일주일 먼저 총회를 개최한 예장 대신 제49회 총회에서는 백석과 통합을 추진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에 총대들은 △교단 명칭 대신 △교단 역사 대신 △신대원 명칭 변경 및 운영권 이양 △3년후 학교법인 대신에 이양 △총대수 5:5를 요구했다. 

대신에서는 “교단 출신 목회자가 중형교단을 일구고 목회 고향으로 돌아온다는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대신에서 신학을 한 장종현 총회장이 신학적 고향인 대신으로 돌아온다는 표현이다. 한마디로 대신이 백석을 흡수하는 뉘앙스다.

분명 통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누군가 이런 말을 퍼 날랐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대신 49회 총회가 열린 9월 18일까지 양 교단은 어떠한 것도 확정하지 못했다. 명칭조차도 ‘백석’과 ‘대신백석’ 두 개를 놓고 조율하고 있었다.  

그런데 온통 ‘대신’으로 통합전권위원회가 보고하자 백석은 적잖이 당황했다. 2014년 9월 19일 대신 전권위 보고를 접한 백석은 당시 통합 중재 역할을 맡았던 동선교회 박재열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명칭을 수용하되 임원은 5년간 백석이 맡고, 역사와 회기는 백석의 것으로 한다”는 제안을 넣었다. 19일 점심 무렵이었다. 집행부와 상의한 박재열 목사는 다시 백석측에 전화를 걸어 “임원만 3년으로 해달라. 총회장은 장종현 설립자가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백석은 ‘임원 3년’ 조건을 수용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문서가 오간 것도 아니었고, 몽땅 대신으로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명칭 대신 △역사 백석 △임원 3년간 백석, 이 3가지를 수락하고 통합을 추진했다. 명칭을 대신으로 사용하는 데도 조건이 있었다. 90% 이상 통합에 합류하는 것과 대신이라는 잔류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것은 통합논의가 처음 시작되던 때부터 백석이 강조한 부분이었고 대신총회 회의록에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박재열 목사와 나눈 통화 내용은 2014년 9월 19일 전광훈 목사에 의해 ‘날인된 문서’로 둔갑했다. 대신 제49회 총회 녹취록을 보자. 

신임총회장 전광훈 목사 : “아니 세상에 봐요. 이름 대신이죠. 교단 족보 다 대신이죠. 그리고 세 번째 지금 여기요. 싸인 받아왔습니다. 싸인. 그 사이에 싸인 받아왔습니다. 서명. 일단 박수부터 쳐주세요. 세 번째는요. 신대원, 백석신대원을 총회에다가 기증을 하고, 말로만 아닙니다. 운영이사를 당장 조직하여 운영이사에게 모든 운영권 총장임명권 교수임용권 재정임명권 모든 전체를 다하고 재단까지도,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재단이사까지도 빠른 시일 내에 분리하여 총회에다 기증하겠음… 돈 낼 수 있는 몇몇 열사람 정도면요 영원히 이 학교에 재단이사를 할 수 있습니다. 돈 안내고는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김치선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 

전 목사의 설명대로라면, 백석은 아무 조건 없이 교단 명칭, 역사, 총대수, 신대원을 내놓은 것이 된다. 그리고 대신 총대들은 전광훈 목사가 흔든 종이에 장종현 목사의 서명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백석에서는 그 어떤 문서도 보내지 않았다. 다만 구두로 3가지 조건을 내걸었을 뿐이다. 

공증 문서에는 90% 이상일 때 ‘대신’
지난 23일 전광훈 목사는 공증한 4개항을 백석이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공증서류는 총회에 보관되어 있다.

‘대신-백석총회 통합 선언 합의서 1. 교단명칭 : 교단 명칭은 대신-백석으로 하되, 대신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9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명칭을 대신으로 하고, 60% 이하가 합류할 시 명칭을 백석으로 한다.(단, 잔류인원이 대신 명칭을 사용할 경우에는 제반 문제에 대하여 대신총회 임원과 통합전권위원회에서 우선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신학대학원 :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명칭은 대신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8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백석대학교 대신신학대학원으로 한다. 3. 총회 대의원 수 : 대신 총회에서 전체 교회 중 90% 이상이 통합에 합류할 시 대신총회와 백석총회는 쌍방 교단에 대한 배려와 한 형제교단으로서의 하나됨을 위하여 대신교단과 백석교단 총대수를 동수로 하며 추후 통합되는 교단의 총대수는 양측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4. 교단의 역사 : 통합총회 역사는 백석으로 한다. 통합 이후 역사편찬위원회에서 새로운 교단사를 편찬하여 대신총회 역사를 병행하여 발행하기로 한다.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은 동수로 하고 위원장은 최복규 목사로 한다.’

2014년 12월 8일 법무법인 신세기에 의해 공증된 서류 내용이다. 이것이 백석과 대신의 통합 최종 합의이자 법적 효력을 갖는 내용이다. 

4개항 공증에도 불구하고 대신 총대들은 제49회 총회 결의가 이행됐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2015년 7월 21일 통합총회를 2개월 앞둔 시점에서 대신 부총회장 유충국 목사가 찾아왔다. 유충국 목사는 대신 총대들을 설득할 확인서를 요청했다. 총회 결의와 다르기 때문에 공증서를 공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석 통합전권위원회는 대신측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확인서’를 써주었다. 

‘확인서 : 백석총회는 총회 결의와 대신총회와 합의 공증한 내용을 근거로 아래의 4개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1. 교단의 이름은 대신으로 한다. 2.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은 대신신학대학원으로 한다.(교과부 허락시) 3. 양 교단의 총대수는 5:5로 한다. 4. 역사는 양 교단의 역사를 쓴다.’ 

확인서에는 분명하게 ‘합의 공증한 내용을 근거로’라고 명시되어 있다. 공증서는 ‘90% 이상 합류시 대신, 80% 이상 합류시 백석대학교 대신신대원’ 등의 세부사항이 적혀 있다. 백석 총대들은 공증을 근거로 통합을 결의했고, 대신 총대들은 공증서의 실체를 모른 채 ‘확인서’만 가지고 통합을 최종 확정지었다. 통합을 위해 누군가는 계속 총대들에게 허위 보고를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9월 14일 수원 라비돌리조트에서 통합총회가 열렸다. 통합총회 개회 전 구 대신은 50회 총회를 열어 통합을 결의했다. 하지만 반대가 많았다. 대신에서는 30% 이상이 통합에 불참했고, 교단을 수호하겠다며 별도의 총회를 열었다. 통합총회 현장에서는 백석 증경총회장이 “90%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명칭을 쓸 수 없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광훈 목사는 “3%가 부족한데 양해해주시면 서둘러 채우겠다”고 했다. 실상은 3%가 아니라 30%도 넘었지만 총대들은 ‘대신’이라는 총회 명칭을 박수로 받았다.

90% 합의가 지켜지지 않았어도 명칭은 ‘대신’이 됐다. 총대들이 수용했고, 박수로 결의했다. 합의보다 총회 결의가 우선했다. 

총회 전까지 유지재단 가입 왜 안했나?
그런데 문제는 수호측이 ‘대신 명칭’을 두고 사회법 소송을 진행하면서부터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통합추진 당시 전제조건에는 ‘잔류인원이 대신 명칭을 사용할 경우에는 제반 문제에 대하여 대신총회 임원과 통합전권위원회에서 우선 해결’하기로 했다. 소송의 책임은 유충국 목사가 맡았다. 결과는 1심 패소. 수호측은 내용증명을 보내 대신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2017년 9월, 통합 후 2년 만에 명칭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다시 불거진 순간이었다. 


정책자문단이 모여 “항소심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신총회 명칭을 다른 명칭으로 교체할 경우 대신총회유지재단 소속 교회의 목사와 재산 관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재판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명칭을 그대로 대신으로 한다”는 최종 합의를 도출했다. 단, “패소할 경우 즉시 임시총회를 소집하며, 구 대신측은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교단 명칭을 둘러싼 두 번째 합의였다. 

하지만 항소심은 패소했고, 백석 총대들은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2018년 7월 6일 장종현 증경총회장의 중재 아래 정책자문단은 정기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시총회를 미루고 교단명칭을 ‘백석’으로 하는 것과 통합합의서의 합의정신에 대한 안건을 9월 정기총회 제1 안건으로 다루기로 했다. 

항소심 패소로 더 이상 대신 명칭을 쓸 수 없었고, 전년도 합의는 ‘패소시 모든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신은 “함께 살겠다”며 2018년 9월 10일 ‘현 대신총회 소속 교회 중 20개 교회가 2019년 7월 말일까지 백석유지재단 가입절차를 완료한다. 만약, 이행이 안 될 시에는 어떠한 조건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세 번째 합의를 하며 교단 명칭을 ‘백석대신’으로 변경했다. 이때 명칭 변경에 반발하여 약 500개 교회가 이탈했다. 

그리고 지난 회기 구 대신은 7월 말까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유지재단 가입을 보류했고, 결국 교단 명칭은 2019년 9월 3일 정기총회에서 ‘백석’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자 구 대신 교회들이 또 이탈하면서 총회 치리를 피해 교단을 탈퇴한 유만석 목사측과 손을 잡고 ‘백석대신총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백석과 대신의 통합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백석 총대들은 통합 합의에 대한 세부사항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매년 총회 때마다 대신의 입장을 고려한 결의를 내리면서 ‘백석대신’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대신은 애초부터 통합에 대한 인식이 백석과 달랐다. 대신 총대들은 백석이 다 내놓은 상태에서 통합을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2014년 9월 19일 전광훈 총회장이 가짜로 흔든 종이가 정말 백석이 보낸 합의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총대 입장에서는 “다 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빼앗아 가냐”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에 충분하다. 

전광훈 총회장은 “백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호도하지만, 사실상 백석은 “다 준다”는 약속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누군가의 거짓된 행동이 한 교단을 사분오열시키고, 대신 수호, 대신 복구, 백석대신 이렇게 3개의 총회를 만들었다. 3개의 대신이 합쳐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총회 명칭은 ‘백석’으로 한다는 지난 9월 3일 발표는 총회 결의를 이행한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미 노회와 교회 단위로 상당히 친밀해진 상태에서 다시 이별하게 된 현실이다. 만약 20개 교회의 유지재단 가입이라는 약속만 성실히 이행됐다면, 혹은 총회 직전까지 몇 교회만이라도 가입하는 성의를 보였다면 명칭은 그대로 ‘백석대신’으로 남았을 수 있었다. 

지난 16일 장종현 총회장은 목회서신에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향후 계획도 듣지 못했다. 이때라도 총대들을 설득할 명분을 저에게 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유지재단 이름부터 바꿔” 끝까지 ‘몽니’
이에 대해 구 대신측에서는 “유지재단에 양해를 구하는 문서를 보냈는데, 유지재단에서 확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가입하려고 했지만 백석이 받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지난 23일 유지재단 사무국장을 통해 대신인모임이 보낸 최종 문서를 확인했다. 6월 30일자로 보낸 대신인모임 문서에는 유지재단의 명칭 변경이 총회 결의에 따라 선 시행되어야 할 법적 조치라고 재차 주장했다. 

대신인모임은 “구 백석과 구 대신의 통합을 향한 진정한 일치의 조치가 총회결의와 합리적인 법적용으로 완성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총회 결의는 ‘백석대신’으로 명칭사용이다. 그런데 여기에 ‘20개 교회 유지재단 가입’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말은 쏙 뺀 채, 유지재단 이름을 ‘백석대신유지재단’으로 먼저 바꾸는 것이 총회 결의를 시행하는 것이라는 궤변을 끝까지 펼쳤다. 유지재단 명칭 변경은 이사회를 거쳐, 총회 결의를 얻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단 시간에 수용될 수 없는 요구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사실상 가입을 미룬 것이다. 이 문서에는 ‘양해’를 구하는 표현은 없다. 유지재단이 이름을 바꾸지 않는 이상 가입할 수 없다는 강경한 문구만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장난이다.

이처럼 매번 총회 결의를 어기고 새로운 조건을 내거는 구 대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약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대해 장 총회장은 “교회수가 훨씬 많지만 한 번도 우리 맘대로 한적 없다. 대신이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줬다. 누가 과연 약자인가”라고 속상한 마음을 표현했다. 

분열은 어떠한 선한 이유를 댄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를 해치는 반 성경적 행위다. 정말 새로운 교단을 만들고 싶다면 조용히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백석대신’으로 총회 명칭을 정한 것까지 반대할 수는 없지만 굳이 백석총회의 역사인 제42회기를 가져갈 이유도 없다. 지난 19일 실행위에서 장종현 총회장은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라며 “잘 되길 빌어주는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과연 수원측의 이탈이 정당한 명분을 가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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