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작과 가톨릭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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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시작과 가톨릭의 만행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9.24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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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170) 30년 전쟁(2)

보헤미아 사람들은 페르디난드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팔라틴의 선제후 프레더릭을 왕으로 선출하였습니다. 반란은 곧 동부로 퍼졌고 인근의 실레시아와 모라비아에도 미쳤습니다. 마침 사촌인 황제가 죽자 황제가 된 페르디난드는 바바리아의 막시밀리안에게 보헤미아를 정벌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는 ‘신성 동맹군’을 이끌고 엄청난 힘으로 보헤미아로 진격했습니다.


프레더릭은 왕의 직책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재위가 너무 짧아서 ‘겨울 왕’이라 불린 프레더릭은 네덜란드로 탈출하였고 페르디난드는 보헤미아에 극악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보헤미아 사람 네 명 가운데 셋을 죽였고 한 명은 노예로 팔았습니다. 이렇게 보헤미아는 페르디난드에게 돌아가고 팔라틴은 막시밀리안에게 충성의 대가로 주어졌습니다. 두 지역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은 처형되고 재산은 몰수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지역을 떠나거나 처형당해야 했습니다.

페르디난드의 득세는 유럽의 개신교도 전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한 유럽의 영주들 모두는 황제의 가문인 합스부르크의 융성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1625년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등은 개신교 동맹을 조직하여 프레더릭을 다시 팔라틴의 영주로 복권시키기로 하고 독일로 쳐들어갔습니다. 페르디난드는 막시밀리안 외에 또 다른 자신의 군대를 소집하여 덴마크의 크리스천 4세와 전투를 벌였습니다. 독일은 그 두 군대의 전쟁터가 되었는데 결국 크리스천은 그에게 패배하여 도주했고 독일 땅은 황폐해졌습니다. 전쟁에 진 결과 다시 무서운 박해가 시작되고 가톨릭으로의 개종이 강요되었습니다.

동트기 전은 절망적으로 어두운 법, 구원은 스웨덴 왕을 통해서 왔습니다.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스는 루터교를 믿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는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국토는 분열되어 있었고 왕위는 대단히 약했지만 그의 현명한 정치는 나라를 점차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도자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의 야전 전술들은 가히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곧 덴마크 사람들을 스웨덴에서 몰아냈고 황제를 배출하고 있는 합스부르크가 세력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끝없는 야심과 야만적인 행위를 중단시키고 개신교도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소명에 불타게 되었습니다.

1630년 스웨덴 왕 구스타브 아돌프스는 잘 훈련된 군사 1만8천 명을 거느리고 발트해를 건너 독일에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틸리가 지휘하는 가톨릭 군은 숫자적으로 훨씬 우세할뿐 아니라 이미 30여 차례나 치열한 전투를 하고 승리를 얻어낸 전문가들이었습니다. 페르디난드 황제와 신하들은 또 하나의 ‘겨울 눈사람 왕’이 나타났다고 비웃었습니다. 

더 어려웠던 것은 독일의 개신교도들이 구스타브 아돌프스 왕과 합세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개신교도들은 페르디난드 황제의 무자비한 처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스웨덴 왕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비록 복음적인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그의 군대까지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스타프 아돌프스를 통하여 개신교도들을 가톨릭의 만행으로부터 구원하실 계획을 착실히 진행케 하셨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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