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숟가락과 나무 막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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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숟가락과 나무 막대기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09.24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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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88

출애굽기 4:1~2>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몇 년 전부터 중·고등 학교와 대학에서 인문학 특강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이 열리고 있다. 이런 강연에 학생들이 스스로 참석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인문학’이라는 말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는 할 수 없이 강제성을 두고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나 역시 일천한 지식이지만 작가로서 학생이나 군인들을 ‘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에서 자주 만나고 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안타까움만 커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말썽쟁이 어린 공룡처럼 뛰어다니는 15살 중2이든, 어벤져스 후예들인양 웬만한 일에도 눈썹 하나 까닥 않는 19살 고등학생이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쳐진 어깨이면서도 여기저기 쉴 틈 없이 삶의 창문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이든, 그리고 다시 중2병이 걸린 듯 한 군인들이든!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 ‘금수저와  흙수저’ 인식이다. 

이제 120년 인생이라는데, 그 120년의 10분의 1도 채 통과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능력이나 자신의 외모와 성적으로 일찌감치 인생의 승패를 스스로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 부모는 연 수입이 얼마이고, 우리집은 몇 평짜리 아파트이고, 우리집 자가용은 몇 CC급이니까 나는 흙수저야 그러니까 나는 잘해야 ooo 정도 직업을 가질 수 밖에 없어.’ ‘내 외모와 키, 그리고 성적으로는 면접에서도 엄청나게 불리할 것이고, 집안에 변변한 직업을 가진 친척도 없고, 빽도 없으니까 난 흙수저도 못 돼. 그러니 내 인생은 뻔해!’ 이런 생각은 지도자라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작태에 대한 보도가 터질 때마다 더 깊어지고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탄식들이지만, 그 한숨 속에는 -학생들이든 군인이든- 자기 스스로 새 숟가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집안)가 손에 쥐어주는 숟가락에 연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나무 수저, 지푸라기 수저, 흙 수저라며 울분을 삭힌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술 더 떠서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하신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What is that in your hand?)”
우리는 모세처럼 답할 수밖에 없다. 
-지팡이입니다. 
사실 말이 지팡이이지 솔직히 말해 그냥 막대기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흙수저도 아닌 지푸라기 수저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약 올리시는 듯 또 말씀하신다. 

“그것을 땅에 던져라.(Throw it on the ground.)”
남들이 보지 않게 슬쩍 땅바닥에 내려놓으라는 게 아니라 소리 나게, 남들 다 보게 던지라구요? 아니, 하나님! 제 것은 막대기(흙수저)에 불과합니다. 그래봤자 창피만 당합니다. 그동안 제가 흙수저인 것을 숨기느라 얼마나 외모도 가꾸고, 실력 있는 척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제 정체를 다 밝히라구요? 

그러나 어쩌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누가 볼까 온갖 것으로 자신을 포장했던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해 나의 볼품없는 흙수저를 땅에, 세상에 던진다. 이제껏 순하디 순한 양들 앞에서나 품 잡던 초라한 막대기. 꽃 장식 하나 없는 껍질 다 벗겨지고 우툴두툴 여기 저기 상처투성이 못난 막대기. 사자나 곰이 나타나면 덜덜 떨면서 흔들어대던 날카로운 가시 하나 박히지 않은 무력한 막대기. 

그런데 이런 막대기, 흙수저를 세상을 향해 내던지라고 하신다. 우리도 모세처럼 내던진다. 그런데 막대기가 뱀으로 변한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모세가 잡는다. 순간, 모세의 “손 안에서” 다시 막대기가 된다. 그 뒤 모세는 빽이나, 학벌의 총칼이나 잘난 부모를 앞세우는 것이 아닌 막대기 하나 들고 세상을 향해 나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손에 든 것이 뭐냐?”고 냉정하게 물으신다. 내 손 안에 있는 흙수저, 막대기를 인정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던질 때… 하나님은 일하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제 품 안에 혹은 등 뒤에 꼭꼭 숨겨둔 채 떨고만 있다. 막대기를 땅에 던지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것으로 역사하실 다음 계획이 정녕 있다. 이 믿음으로 흙수저, 막대기 하나 손에 잡고 땅과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행진이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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