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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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 노경실 작가
  • 승인 2019.09.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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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시편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 동네는 좋은 동네일까?’ 전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흥업소나 음란물 관련 전단지는 거의 볼 수 없다. 대신, 기존 교회이든 이단이든 전도자들은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많아서인지, 신앙경륜이 꽤 길어서인지 그들의 표정이나 말투, 전도지를 보면 옳은 복음을 전하는지 거짓을 전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열심과 특심이다. 

나는 거리에 나가 전도를 하지 못하는 대신 새벽마다 열방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요즈음은 파키스탄 지역의 소수 부족들(거의 무슬림들)과 각국의 긴급 기도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매달 나오는 두 권의 묵상집에 실린 열방기도문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책에 실린 열방의 기도글을 읽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곳에 선교를? 이건 절대 불가능이다!’ 라며 중얼거릴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정확한 지명을 잊었는데…히말라야 산맥에 사는 어느 부족 안으로 독일인 선교사가 들어갔다. 그는 완전 원시인처럼 그들과 어울려 살며 복음을 전했으나 단 한 명도 회심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죽음 직전에 복음의 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선교사는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우리들 생각에 그 첫 선교사는 눈을 감을 때 얼마나 애통해하며 울었을까? 라고 가슴 아파할지 모른다.) 그 후 다른 나라 출신의 선교사가 와서 그 씨앗이 자라남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간이 거의 100년이라고 했다. 두 선교사의 대를 이은 눈물의 시간이 100년이 된 것이다. 100여 년의 시간을 통해 겨우 씨앗 한 두 개가 움을 튼 것이다. 

그리고 3대를 이은 선교사가 들어와서 부족들과 함께 문명생활을 다 버린 채 차밭을 일구며 복음을 전하고, 그 새순을 막 가꾸려는데... 그런데!!! 강력한 종교악법이 시행되면서 선교사를 강제 출국시킨 것이다. 그러하니 다시 그곳에 선교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달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3대에 걸친 선교사역, 110년이 넘는 선교의 시간, 수많은 독일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기막힌 것은 이런 사연이(?) 한 둘이 아니라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선교사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다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병이 걸릴 정도이다. 그래서 문밖을 나서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며 우는’ 것인가?

나의 책상 한 쪽에는 ‘질문 노트’가 있다. 언제든 현자를 만나든, 훗날 예수님을 만나든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을 적어 놓은 노트이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 땅끝까지 전도하라고 명령하시고, 부탁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이토록 선교의 문을 좁고, 그 길을 어렵게 하셨나요? 왜 선교사들이 말 한마디 못하고 숨을 거두게 하셨나요? 한 사람의 선교사가 세워지려면, 본인은 물론 우선 그 사람의 가족과 친척 등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물질과 공동체의 기도가 있어야 하는지 주님이 더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선교 못하고 쫓겨나오거나, 어이없게 죽어야 하는 거지요? 아니, 왜 선교지에 들어갈 수도 없는 거지요? 우리보고 선교하라고 하셨잖아요. 일단 들어가게는 해주셔야죠.-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나의 이 질문을 들으면 유치하다고 비웃을까? 그러나 새벽마다 열방을 위해 기도한다고 무릎 꿇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지푸라기의 부스러기 같은 나로서는 답답할 뿐이다. ‘도대체 이런 나라에, 이런 부족 안에 복음이 뚫고 들어갈 바늘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선교하기도 전에 목을 베일 것 같은데.’

마치 고대 시대의 전투같다. 적군들이 성벽 위에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화살을 쉼 없이 쏘아대도 아군의 병사들은 계속 성벽 위를 기어오른다. 앞선 동료들이 화살에 맞아 죽고, 죽고, 죽어 넘어지는 걸 보면서도, 그들의 시체를 발판 삼아 슬퍼할 사이도 없이 성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성을 정복한다. 

선교도 이러한 것인가?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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