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에서 발견하는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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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서 발견하는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9.09.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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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선교유산 만나는 ‘정동길’ 걷기

서울 도심 한복판의 행정구역 정동.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진 익숙한 곳. 사람들이 그만큼 잘 알지 못하는 공간이 정동이다. 다양한 조선의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교회 초기 선교 역사가 간직된 보고가 또 정동이다. 하지만 신앙인 중 정동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에 등장하는 정동제일교회를 들어봤을 정도는 아닐까. 

초기 선교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정동 일대를 신앙인들이 잘 알 수 있도록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사장:김지철 목사)이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시와 손을 잡고 한국교회 성도들을 위한 미션로드 투어코스 개발에 나선 것. 지난 29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원 홍승표 박사가 해설자로 참여한 가운데, 20여명 참가자들과 함께 첫 시범투어를 가졌다.   

▲ 선교사들은 구한말 정치 외교의 중심지였던 정동에 터를 잡고, 민초들과 소통하며 복음을 전했다. 지금도 정동길을 걸으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는 유적들이 가득하다.

“교회 옆에 늘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출발 장소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돌아갈 만한 시간,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기대감에 다들 표정이 살짝 들떠 있다.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다. 당대로는 YMCA 회관과 함께 서울시내 최첨단 건물이었다고 한다. 고종 황제가 직접 이름을 하사한 배재학당은 투어 출발지 의미로는 안성맞춤이었다. 

현재 역사박물관은 과거 배재학당 동관 건물이다. 외벽에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과 총탄흔적 일부를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은 아쉽다는 생각이었지만, 서관 건물과 운동장이 도시 개발과정에서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무사히 철거 위기를 넘겨 지금이라도 남아있어 준 것이 도리어 감사했다. 

기독교 정신을 교육이념으로 삼았던 배재학당은 민족의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었다. 서재필, 윤치호, 주시경, 지청천, 김소월, 이승만, 나도향 등 당대를 대표했던 인물들이 배재학당 출신이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을 나와 뒤편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역사를 기념하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비문이 세워져 있었다. 비문을 읽고 고개를 들면 러시아대사관 옆 정동제일교회가 이내 마주 보인다. 

홍승표 박사 설명에 따르면,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은 교회 인근에 반드시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가톨릭 교회와 선교적 차별성을 두고자 했다. 사회 공헌을 위한 선교사들의 의지는 컸다. 명동성당과 같이 가톨릭은 높은 언덕에 성당을 지었다면, 교회는 민중들과 직접 소통하는 평지에 지어졌다. 고종은 선교를 금지했지만 선교사들은 세상과 소통하며 민중의 마음을 열었고 고종과 조선을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다. 

▲ 정동제일교회에서 홍승표 박사가 정동길 순례객들에게 교회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제일교회는 미국 감리교 본부에서 보내온 교회건물 도록 ‘25번’ 설계도에 따른 건물이었다. 특별하기보다 전형적인 미국 시골교회처럼 아담하다. 그만큼 서민적이다.  

당시 정동제일교회는 주일에는 예배공간으로 활용되다, 평일에는 백성들의 교육을 위해 많이 사용됐다. 홍 박사는 “특히 오르간 연주, 서양식 결혼식, 근대 연극공연 등 최초라고 할만한 근대 역사를 많이 간직한 곳”이라며 “최초의 근대식 토론회도 이곳에서 열렸다”고 설명했다. 

그 첫 토론회에서 주제는 ‘여성에게 안수를 줄 수 있는가’였다 한다. 남녀차별이 상당했던 당대를 생각하면 새삼 놀라운 역사가 정동제일교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정동제일교회는 민족대표 33인 중 이필주 목사와 박동원 전도사가 사역했던 곳이다.  

교회 정문을 나와 길 건너에는 ‘광화문연가’ 작곡가 이영훈의 노래비가 있다. 그 덕수궁 돌담을 따라 올라가 정동극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중명전을 만나게 된다. 고종의 편전이자 외국 사절들을 만났던 근대식 궁궐.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고통의 건물이 중명전이다. 고종이 을사늑약 후 상동교회 청년 이준과 헐버트 선교사를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로 파견한 곳이 바로 중명전이었다. 

중명전 왼쪽에는 ‘예원학교’가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1895년 세운 새문안교회가 ‘장로교 정동교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곳이 ‘예원학교’ 자리이다. 홍 박사는 당시 학교 운동장과 주변에 알렌과 언더우드, 마펫, 헤론 등 선교사들의 집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서 기독학교 정신여고, 연세대학교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 서울 도심 한복판의 행정구역 정동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한국교회 초기 선교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고종의 길’ 등 새로운 골목 공개돼

8월 말이지만 이미 하늘은 가을이었다. 탈북자 출신의 대학생 송예은 씨(한국외대 3년)는 “북한에서 배우지 못했던 조선의 역사와 선교사들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어서 좋다”며 “주변 친구들에게 투어코스를 꼭 추천해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근대식 여성교육기관 이화여고와 이화여자대학교 전신이 되는 이화학당 역사를 볼 수 있다. ‘이화100주년기념관’(심슨관)에는 이화학당에서 처음 이름을 얻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던 조선의 여성들을 만나게 된다. 선교사들은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이름을 지어줬고 그때부터 여성들은 다른 인생을 갖게 됐다. 

역사관 바로 옆에는 1923년 세워진 이화학당의 옛 정문 ‘이화 사주문’이 남아 있다. 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문이지만, 왕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하마비’가 남아 있어 흥미로웠다. 

이화 ‘사주문’ 너머 언덕을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 끝에 시선을 보내면 지금은 탑부만 남아있는 건물이 보인다. 명성왕후 시해 후 고종이 피신했던 구 러시아 공사관이다.

이번 투어에서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얼마 전 복원된 ‘고종의 길’을 걸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구 러시아공사관을 잇고 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과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담길은 무언가 비밀스런 느낌이 물씬 난다. 

‘고종의 길’을 나오면 웅장한 느낌의 또 다른 서양식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1928년 건립된 구세군중앙회관이다. 현재는 구세군 대한본영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한국 구세군의 선교사역과 독립운동의 역사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또 비밀의 길을 만났다. 역시 최근에야 개방된 길은 영국대사관과 덕수궁 사이 골목길이다. 골목 끝에는 덕수궁 쪽문과 대사관 쪽문이 마주한다. 쪽문으로 들어가 덕수궁 안길을 잠시 경유해 나오면 마지막 코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기다리고 있다.  

등록문화재 한옥 ‘양이재’와 로마네스크양식의 석조건물 ‘대성당’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마당에 설치된 ‘1987년 6월 민주항쟁 진원지’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일행은 대성당 바로 인접한 ‘성가수녀원’을 방문했다. 이번 투어를 위해 성공회에서 특별히 허락한 수도처이다. 도심 한복판에 이처럼 고즈넉한 공간이 있다니…. 수도자들은 매일 5~8번 예배를 하고 기도와 노동,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다.  

성공회는 개신교회로 분류되지만, 투어 참가자들은 성공회 대성당에 들어섰을 때 모두 낯설어 했다. 1892년부터 사용했다는 세례대, 높은 천장과 석조양식은 웅장함을 전한다. 한국적 요소가 가미됐다는 창 문호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됐다. 

주교좌성당은 1922년 착공해 1926년 완공했지만 재정이 부족해 설계 절반만 완성됐다. 선교 100주년이 되던 때 다시 증축하고자 했지만 이미 문화재로 등록돼 있어 불가능했다. 영국박물관에서 설계도를 겨우 발견해 원래 설계대로 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동양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성화와 지하 성당에는 ‘마크 트롤로프’ 조선성공회 3대 주교의 무덤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성당 벽면에는 한국전쟁 참전한 영국군과 순교한 사제들을 추모하고 있는 것이 인상 깊다. 올 가을에는 정동의 기독교 유적을 탐방해보길 권해본다. 

▲ 배제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 동상과 옛 배제학당 동관 건물
▲ 최근 복원 조성된 '고종의 길'
▲ 현재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한국구세군중앙회관 건물
▲ 등록문화재 '양이재'에서 바라본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성공회 '성가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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