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기념 성명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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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기념 성명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온도차’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8.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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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단체들 성명 발표…한일 갈등 책임론 놓고 방향 갈려
▲ 한국교회총연합이 지난 8일 한교총 회의실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광복을 완성하라'를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한국의 기독 단체들이 일제히 성명을 발표했다. 단체들은 하나같이 성명의 대부분을 일본의 경제 보복과 그로 인한 양국 간의 갈등에 대한 내용에 할애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을 어디로 돌리느냐에서는 단체마다 온도차가 나타났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승희‧박종철‧김성복)은 지난 8일 일찌감치 기자회견을 열고 대대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한교총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교총은 “3‧1 독립운동 100주년이자 광복 74주년을 맞이한 지금, 아베 정부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명분으로 헌법 개정을 도모하고 있고, 일본 극우파 또한 혐한 분위기를 계속 고조시키고 있다”며 “이는 평화적 선린외교의 길을 버리고 제국주의적 침략의식의 길을 택한 것이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교총은 특히 “과거를 반복하듯 자행된 일본의 경제 도발을 계기로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완전한 독립과 광복의 길로 달려가야 한다. 도덕과 상식이 통하고, 정의가 구현되며 인권이 보장되는 건강한 미래를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한다”며 “우리의 다음세대가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나 새 시대의 주인이 되고, 복음 안에서 남북이 통일되어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교강국이 되도록, 한국교회가 분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이홍정 목사)는 ‘미래는 역사를 기억할 때 열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교회협은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일본이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다시금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한다”며 “침략자와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고 이웃 국가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침략의 야욕을 스스로 씻어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무슨 기대할만한 평화의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특히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의 선언처럼 한국과 일본은 서로의 안녕을 위협하는 적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평화롭게 상생하며 ‘동북아시아의 공동의 집’을 함께 지어가야 할 가까운 이웃”이라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일제 치하로부터 ‘출애굽’을 허락하신 것처럼 이제 곧 다가오는 하나님의 때에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가나안’을 이룩하실 것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교총과 교회협이 성명을 통해 아베정권에 대한 규탄과 우리의 자각을 다룬 반면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권태진 목사)을 비롯한 여타 단체들의 성명에선 오히려 우리 정부의 책임론에 무게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한교연은 ‘광복 74주년 메시지’에서 시민사회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불매운동과 관련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일본과의 갈등 가운데 자칫 반일 감정에 경도되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된다”거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했다가 우리 경제에 파국을 초래하여 국민들을 또 다시 헐벗고 가난했던 시대로 돌아가게 한다면 이는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 혹은 “지난 일에 얽매이기보다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에 충실해야 할 때”라며 아베정권의 문제보다는 우리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뉘앙스를 전했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송태섭 목사)도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시각을 성명에 담았다. 한장총은 “우리는 여러 차례 한일협정이 있었다. 국가 간의 깨서는 안 되는 합의이며, 국제법상의 문제로 우리 국내법의 주권영역을 넘어서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며 분쟁의 책임 소재를 우리 정부로 돌렸다.

한장총은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극우, 보수라고 밀쳐내는 50~80대도 이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고문당하고 투옥되고 피 흘렸다. 젊은 청년의 시기를 최루탄 가스에 묻혀 살며 인생의 꿈들이 무너지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지켜냈다”며 은근히 세대갈등을 부추기는가 하면 “촛불혁명의 참뜻이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공산사회주의를 택하겠다는 것이었겠는가”라며 현정부의 정책이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처럼 호도하기도 했다.

끝으로 대통령을 향해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독립선열들과 대다수 국민의 염원이던 자유민주주의를 버리고 국민을 다시 원점으로 끌고 가고 있다”면서 “대통령은 먼저 국민에게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고,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유만석 목사)도 광복 74주년이 되도록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급기야 심각한 갈등관계에 놓여 있다이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참회가 부족한 탓도 있으며, 우리나라가 과거사를 딛고 진취적 역사 발전을 위한 의지 부족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광복 74주년을 맞는 2019년 한·일 관계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려는 의지의 부재와, 오히려 갈등을 국내정치적 손익 계산에 의하여 더 가속되이 몰고 간다는 의심은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했다. 

언론회는 특히 “대통령과 정치권이 나서서 일본과 전챙을 부추기고 국민들에게 싸우고 손해를 보고 기업은 망해도 개의할 일이 아닌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나쁜 정책”이라고 규탄했다.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최낙신 목사)는 “우리 국민들은 안보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음을 대한민국 정부는 잘 인식하고 정책의 부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한·일 두 나라 국민의 갈등으로 증폭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5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친일을 독려하는 일부 교회의 행태가 영상을 통해 소개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교인들의 카톡방에서 ‘일본은 맞고 한국은 틀리다’ 식의 글과 동영상 링크가 넘쳐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방송에 소개된 한 목사는 “문재인 정권이 반일을 고집한다면 정권을 교체해서라도 친일로 가야 한국의 안보가 지켜진다”는 발언까지 해 충격을 전했다.

일부 개신교 집단들이 극우를 넘어 친일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부 역사학자들은 대다수의 교단들이 일제의 압력에 굴복해 신사참배에 앞장서는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교회는 해방 후에도 친일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분석한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명예교수(숙명여대)는 ‘해방 50년, 한국교회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민족 해방이 식민지하의 반민족적인 잔재를 청산하는 일과 연결되어야 했듯이 한국 교회의 신앙자유 회복은 일제하의 반기독교적 죄악을 청산하는 것과 직결되어야 했다”며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단호히 청산해야 할 자리에서 지나치게 타협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또 “반공을 핑계로 일제하의 반민족 행위를 청산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이 실패는 곧 기독교 안의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일에도 영향을 미쳐 일제하의 비기독적 요소를 단절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느헤미야의 배덕만 교수(역사신학)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문제가 정치적인 진영논리로 인해 불거졌다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서북지역에서 내려와 남한에서 재구성된 개신교회가 반공의 주역으로 활동했고, 북한과 친밀한 정책을 펴는 진보 정권의 집권은 이들에게 존재론적 위기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이들은 정권과 밀월관계를 맺으며 서로 ‘윈윈’했지만 친북정책을 폈던 김대중 정권의 등장 이후 처음으로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며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정책에 더해 사학법 개정이 시작됐고, 사학의 80프로를 차지하는 개신교는 진보정권에 대한 더욱 강력한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보수 기독교계 입장에서 DJ 노무현 정권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문재인 정권이 어떻게든 문제를 찾아서 흔들어야 하는데 이번 일본과의 무역분쟁은 이들에게 중요한 건수로 부각된 것”이라며 “일본의 책임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으로 몰아가면서 친일파적인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마지막으로 “남한의 기독교가 굉장히 위축되고 있다”며 “교회가 위축 되는 것을 외부의 요인으로만 돌리면서 정작 우리 안의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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