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던진 성경 읽고 마을사람 70%가 예수 믿어

[신앙과 삶]북인도 이정태 선교사 손동준 기자l승인2019.08.06 15:18:37l수정2019.08.07 12:37l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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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교회 사라지고 찾아온 시련…더 큰 은혜로 ‘반전’
꿈속에 음성 들은 뒤…명확하게 확인한 사역의 열매

▲ 북인도 데라둔에서 사역중인 이정태 선교사 내외. 이 선교사는 파송 교회가 사라진 뒤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시기를 통해 하나님은 사역의 비전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주셨다고 고백했다.

“인도인들이 저를 밟고 일어나서 그들 스스로 많은 열매를 맺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다만 인도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잘 썩어지기를 바랄 뿐이죠.”

지난 2006년 인도에 파송된 이정태 선교사(백석 23기, 50세). 그가 말하는 인도에서의 지난 13년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그야말로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애통한 마음으로 떠난 선교

이 선교사는 본래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신앙 정착을 돕기 위해 인도 행을 택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열매가 맺혔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원래 종교로 돌아가는 문제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들을 신앙적으로 끌어줄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죠.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방 출신입니다. 변방이고 오지이니까 선교력이 잘 미치지도 못하죠. 그러다보니 가족 공동체 안에서 버티지 못합니다.”

아낌없이 복음을 전했던 영혼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인도로 향했다. 현지인 사역자들을 통해 가정교회를 개척했다. 하지만 사역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날 무렵부터 어려움을 깨달았다. 이 선교사 본인부터 언어가 부족했고 현지의 문화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한 현지인 사역자를 통하는 것만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2007년 12월 그루가온 지역에서 자국민 선교사 훈련과정을 개설하고 수료생들을 가정교회에 파송했다. 2010년까지 4기수를 운영했지만 이듬해 파송교회가 사라지면서 혹독한 고난이 찾아왔다.
 

최악의 상황에서

각 지역으로 보낸 자국민 선교사들을 끌어주지 않으면 사역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파송교회가 사라지면서 재정적으로 발이 묶였지만 철수할 수 없었다. 

“돈이 없어서 철수하는 선교사가 되기보다 차라리 현지에서 굶어 죽어서 예수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를 듣는 게 더 영광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루가온의 살림을 싹 다 정리하고 히말라야 자락에 위치한 데라둔이라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거기에서 힌두교 사원 앞의 작은 방 한칸에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한 생활을 시작했지요.”

이 선교사는 “자국민 선교사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할 수는 없었지만 존재만으로 영적인 힘이 됐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현지인들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았다. 현지인들의 교회 또한 규모가 작았지만 때마다 휘발유를 페트병으로 모아 보내는 등 이 선교사 가족의 생계를 지원했다. 

주변의 한국 선교사들은 이 선교사 가족을 보며 “후원교회가 끊기고 현지인들에게 얻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하나님께서 선교사님 가정을 택하신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며 철수를 권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이 선교사의 마음 속에서는 오히려 결단이 섰다. 
 

믿음의 결단을 내리다

힌두교 사원 앞에 살다 보니 힌두교 사제인 구루들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1년 12월 23일부터 보름간 사제들이 수련하는 히말라야의 동굴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실 이 계획은 무모하다고 할 만큼 위험한 것이었다. 예수님 때문에 죽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동굴로 갈 돈이 없었다. 산에 올라가기 3일을 남겨두고 속상한 마음으로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는데 그는 꿈에서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됐다. 

“꿈에 두 사람이 서 있는데 제 느낌에 불쌍해 보였어요. 그 중 한 사람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저희 부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향해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때 비웃는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 크게 외쳤습니다. ‘저 두 부부를 위해 격려하는 자는 축복하고 비웃는 자는 저주한다’는 말씀이었죠. 그리고는 그 음성이 저희를 향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한 바 되지 않게 너희에게 권능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뜨거운 느낌에 잠에서 깼는데 덮고 있던 이불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이 선교사는 즉시 일어나 후원자들에게 급하게 기도편지를 썼다. 혹시라도 기도의 후원자들이 꿈속에서 본 조롱하는 사람들이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1500킬로 떨어진 히말라야로 힌두 사제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저희를 위해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후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3일만에 150만원이 채워졌다. 그 돈을 가지고 가서 복음을 전했다. 힌디어로 만들어진 성경 만여 권이 산 속의 사제들과 현지 종족들에게 전달됐다.
 

▲ 이 선교사가 진행 중인 학부과정 학생들.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다

그때부터 이 선교사의 마음속에 자신감이 샘솟았다. 살고 있던 데라둔 지역의 장로교신학교에 불쑥 방문하게 된 것. 자신이 장로교 출신임에도 단 한 번도 방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현지의 기득권 크리스천들은 한국 선교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도 가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무슨 자신감인지 학교를 찾아가 한국 장로교를 대표하는 선교사라고 소개하고 바로 총장을 만났습니다.”

당시 자신이 하던 사역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자국민 사역의 필요성을 피력했더니 생각지 못했던 반응이 나왔다. 데라둔 장로교신학교 총장은 이 선교사에게 “당신을 위해서 40년을 기다렸다”며 “폐지됐던 힌디어 과정을 맡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후 이 선교사는 학교와 업무협약을 맺고 그루가온과 암리차르, 데라둔 등 12개 지역에서 힌디어 신학과정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데라둔 장로교신학교가 책과 교수를 보내 이 선교사가 길러낸 사역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문학사로 70점을 가르치는 이 프로그램에는 해마다 30명이 졸업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신학도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한 과목을 배워서 마을로 돌아가 또 다른 리더를 가르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선교사에 의해 개척된 교회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 또 개척되는 토착교회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1월 열린 암리차르 평신도신학교 졸업식 모습.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

신학교 사역이 시작된 이후 이정태 선교사가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순간이 있다. 2016년 여름 카슈미르의 한 마을로 사경회를 갔을 때 생긴 일이다. 신학교 사역을 통해 알게 된 한 여학생이 자신의 마을에 와서 사경회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내와 함께 그 지역으로 찾아 갔는데 목적지에 가까이 갈수록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진 것. 그 곳은 2006년 처음 선교사로 파송 받았을 때 아들과 함께 발이 닿는 대로 산골짜기를 걷다 길을 잃었던 곳이었다. 

우연히 도착한 그곳은 힌두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곳이어서 직접 전도를 하지 못했고 두 사람은 담장 너머로 성경이 들어 있는 비닐 봉지를 던져 놓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후로도 두 부자는 연례행사처럼 그곳을 방문해 먹을거리와 성경을 집집마다 던져놓고는 했다. 

10년 만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경회를 개최하게 된 걸까. 이야기를 들어 보니 5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이 학생의 삼촌이 밤에 지붕에서 자다가 성경과 사탕 두 알이 담긴 비닐이 날아와 읽기 시작했다. 마침 귀신에 들린 마을 장로였던 아버지에게 예수의 이름을 선포 했는데 그날로 귀신이 떠나가고 예수를 믿는 첫 가정이 됐다는 것이었다. 

이 선교사는 “수년동안 성경을 던졌으니 제가 뿌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며 “마을의 70퍼센트가 예수를 믿게 됐다는 말에 사람들과 함께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 것은 성경을 던진 것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큰 위로를 주셨다”며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했다. 

한편 이정태 선교사는 최근 12번째 신학부과정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설한 과정 중 가장 큰 규모다. 이 과정을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기초 준비도 최근 시작했다. 내년 2월부터는 신학뿐 아니라 졸업생들이 여러 직종에서 사역이 가능하도록 미용과 음악 등의 과목도 개설할 계획이다. 특별히 백석대학교를 비롯한 여타 대학들과의 협약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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