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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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 황의봉 목사
  • 승인 2019.07.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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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 목사의 교회사 산책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7)

메리 스튜어트가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올 때까지 국사는 잠시 12명으로 구성된 추밀원에서 이루어지다가 정치 주도권은 의회로 넘어갔습니다. 낙스는 즉시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있은 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낙스와 다섯 명의 목사들에게 신앙 고백서 작성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낙스는 4일 만에 다섯 명의 동료 목사들과 같이 신앙 고백서를 작성, 의회의 상임위원회에 제출했고 상임위원회는 이 고백서를 인준하여 본회의에 상정하였습니다. 로마 천주교도들이 입법 과정을 살피려고 참석하였지만, 의회가 개혁자들이 제출한 신조를 채택하므로 개혁자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의회는 로마 교황청이 주장하던 사법권을 폐지하고, 미사를 불법으로 정죄하는 등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집회를 불법화하고, 프랑스와 단교를 선언하였습니다.

총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는 칼뱅의 요리 문답과 1559년의 프랑스 신앙 고백, 폴란드인으로서 칼뱅주의자인 존 라스코와 스위스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글들을 참조한 것이 역력합니다. 그럼에도 이 신앙고백서는 스코틀랜드 교회의 산물이요, 낙스의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신앙 고백은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이 나오기까지 스코틀랜드 교회의 교리적 표준이 되었습니다.

서문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가 고백해 오면서 수치와 위협을 받던 교리의 모든 것들을 만천하에 공포하기를 오랫동안 갈망해 왔습니다”로 시작되어, “우리는 끝날까지 이 신앙 고백에 머물러 있기를 단호하게 천명합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서는 진리에 대한 진술들이 무오한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성경 안에서 수정과 개선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제20항은 교회 회의들의 무오성에 반대하면서 “어떤 회의들은 분명히 과오를 범하였으며, 그것도 매우 중대한 내용에서의 과오였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낙스는 1546년 트렌트 종교 회의가 취한 가톨릭의 구원관에 기겁하였습니다. 트렌트 종교 회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교회가 베푸는 성례전에 참여하여 신과 인간이 협동함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미사의 참석은 가톨릭의 구원관에서는 필수적이었습니다. 

낙스는 인간의 방법이 배제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미사의 폐지를 주장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 제8장은 다음과 같이 담대히 선언합니다. “동일하신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직 은총으로 이 세계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머리요, 형제요, 목자요, 우리 영혼의 위대한 감독으로 지명하셨다.”

교회관에 대해서는 제18장에서 교회의 3대 요소, 곧 말씀의 참된 선포, 올바른 성례전의 집행 그리고 정당한 교회 훈련(권징)을 언급합니다. 이때부터 스코틀랜드의 개혁은 완성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개혁은 후세들에게도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혁은 특별히 교육에 강조를 두고 있었습니다. 모든 교구에서 젊은이들에게 경건 훈련을 시켰고 주요 도시에는 대학들이 설립되었습니다. 낙스는 어느 지역에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과 복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평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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