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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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7.0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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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무리한 축호전도

열정만 앞세우기보다 장기적 안목 가져야

지인 A가 최근 경기도 남부의 한 신도시로 이사를 했다. 천주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란 그는 개신교인 남편을 따라 이따금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나가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개신교인’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돌을 갓 지난 자녀를 키우는 A가 최근 새집에서 교회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며 내게 털어놓았다. 주변에 제법 큰 교회가 있는데 자꾸만 찾아와 전도를 한다는 것.

A는 교회에서 처음 전도를 왔을 때, 전도 자체는 기분 나쁘지 않았는데 초인종을 눌러 자던 아이가 깨 곤란했다고 했다. 그 집 현관문에는 ‘아이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주세요’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그는 신경질은 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교회에 다닌다’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같은 사람이 또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전도를 시도했다.

짜증이 난 A는 현관문을 열고 “초인종을 누르지 말아 달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 왜 또 초인종을 누르냐”며 항의했지만 상대방은 오히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전도를 시작했다. “어느 교회를 다니느냐”, “당신네 교회는 너무 멀다 가까운 우리 교회로 나오라”는 등 거침없이 A를 설득했다.

화가 난 A는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누르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하고 문을 닫았지만 오랫동안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 사람은 며칠 후 똑같이 초인종을 눌렀다.

A는 결국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교계 내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니 이 교회는 공격적인 전도로 제법 숫자를 늘린 것으로 유명했다. 국내 최대 교단에서 임원까지 한 목회자가 담임으로 있는 곳이지만 정작 주변 교회들 가운데는 ‘화끈한’ 전도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곳도 있었다.

과거 이런 ‘축호 전도’는 ‘마을’의 개념이 살아 있을 때 유용했다. 마을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얼굴을 알던 시절,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통용되던 때에는 가정에 방문해 전도를 하는 것이 크게 예의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현대인들은 익명성에 숨어 단절된 삶을 산다.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침범하는 일은 다소 자연스럽지 않을 뿐 아니라 무례하게 느껴질 소지가 있다.

축호전도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도가 사라지는 시대에 오히려 이런 열정을 가진 전도자를 격려하고 추켜세울 필요도 분명 있다. 웨스트민스트신학대학원대학교 김선일 교수(전도학)는 “내가 할 말이 있으니 무조건 들으라는 식의 접근은 현대사회에서 예의가 아니다”라면서도 “축호전도나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이 거기서는 크게 결실이 없을지 몰라도 전도가 습관이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함부로 비판만 하고 금기하기보다 열정이 바르게 나타나도록 교회가 바르게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단시간에 결실을 맺으려 하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삭막함을 깨고 이웃을 만나면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건네는 것에 오히려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유익하다”며 “상대방이 신뢰하고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인 전도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관계전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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