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10주’ 이내 제한해야…예방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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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10주’ 이내 제한해야…예방이 우선”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9.07.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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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입법과제는?

낙태예방과 ‘생명가치관’ 교육 필요
한국교회가 생명담론 먼저 펼쳐야

지난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면서 국회는 올해 2020년 12월 31일까지 새로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본격적인 법 시행을 앞두고 유예기간을 둔 이유는 사회 각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합리적인 세부 법안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실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지면서 기독교계는 국가가 보다 엄격한 낙태기준을 통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헌재는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임신 22주 내외’라고 제시했다. 유예기간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기존에 제시된 낙태의 허용가능기간을 그나마 축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지면서 낙태와 생명경시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입법 방향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요청되는 가운데 성산생명윤리연구소(소장:이명진) 주최로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낙태죄 헌재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정책토론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명진 소장은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지만 입법의 합리적인 방향을 위해 의학계. 법조계. 여성계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생명을 살리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낙태죄 헌법 불합치 이후 입법과제에 따른 쟁점과 낙태문제의 근본적 해결방법에 대한 담론이 오갔다.

태아는 여성의 몸이 아닌 ‘독립된 생명체’

헌재의 낙태죄 폐지 여부를 놓고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기독교계에서 생명은 보편적 가치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헌재는 준비되지 않는 임신이 가져올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영향에 따른 문제를 고려할 때 태아의 모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여성계와 진보 시민단체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배정순 교수(경북대 외래교수)는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권이라면 누구도 가용하거나 제한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태아가 여성의 몸 일부라고 할 수 없는 독립된 생명체임은 과학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수용할 경우 여성은 태아생명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낙태권을 주장할 동력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특히 낙태와 자살문제의 연관성을 언급한 그는 “태어나는 것도 선택할 수 없듯 죽는 것도 선택의 범위가 아니라는 마땅한 전제를 거부하면 언제든 자살이 일어날 수 있다”며 낙태죄 폐지가 불러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우려했다.

신동일 교수(한경대)는 “법에서도 생명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임신은 자유이지만 착상 후 출산까지는 자기결정의 범위에서 벗어난 공동체의 표준적 행위규칙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법적 영역에서 낙태는 타인 살해의 정당화 또는 적정화 구조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 이어 신 교수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입법을 통해 낙태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낙태 허용기간, ‘임신 10주’ 이내 제한해야

특히 낙태죄 폐지 이후 새로운 법안의 입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쟁점이 있다. 가장 큰 쟁점은 ‘낙태 허용기간’의 설정이다. 헌재가 낙태의 허용 범위를 ‘임신 22주’로 밝힌데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 헌재는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과 임산부가 임신유지와 출산여부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기를 고려해 ‘결정가능기간’을 정하라”고 판단했다. 의학계에 따르면 현 의료기술에서 임신 22주 내외부터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기준에 근거에 ‘임신 22주’를 일종의 한도로 제시한 것이다.

지난 6월 검찰도 헌재의 판단에 근거해 임신 기간 12주 이내 낙태를 한 피의자에 대해 앞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감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불기소 처분을 말한다. 또 임신기간 12~22주 이내 낙태를 한 경우에는 국회가 낙태죄에 대한 새로운 입법을 할 때까지 기소를 중지하기로 했다. 낙태죄 폐지 두 달여 만에 이뤄진 법적 조치다.

고대의대 산부인과 홍순철 교수는 낙태의 허용기간에 대해 “임신 10주 이내로 제한돼야 한다. 의학적으로 태아는 임신 5주 3일이면 심장이 뛰고 10주 후 부터는 장기와 팔, 다리가 모두 형성돼 사람의 모습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입 벌리기, 손가락운동, 발가락 구부리기, 삼키기 등을 하며 이미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며 낙태 허용기간의 단축을 요청했다.

또한 그는 ‘태아의 기형’이 낙태 사유에 포함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장애가 예상된다고 낙태 대상이 되는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대부분 태아 기형이 치료가능하게 됐고, 다양한 사회복지제도로 장애인도 함께 사는 사회가 구현돼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그는 △낙태 시술 전 숙려기간과 상담제도의 마련 △정부의 낙태 시술기관 지정 △임신 유지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사항으로 제안했다.

홍 교수는 “10년 전부터 저출산 문제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하고 불필요한 낙태도 줄여 저출산 극복의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그만큼 아이를 마음껏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방’이 진정한 낙태문제의 해결방법

낙태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책은 ‘예방’일 것이다. 독일 출신으로 일본의 죽음준비교육의 대가인 알폰스 디켄교수는 ‘죽음’이나 ‘생명’을 인문학이나 문화예술적인 활동을 통해 경험적으로 가르쳐야 효과적이고 연령대별로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생명의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알리는 교육적 대안이 요청된다.

배정순 교수는 “자살은 낙태와 마찬가지로 특수한 상황이 동반되고 은밀히 이뤄지는 것으로 둘의 공통적 부분은 예방을 통한 해결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가장 시급한 것은 문제에 대한 진단이고, 다음은 교육을 통한 예방”이라며 “어린아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생명가치관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생명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배우는 과정은 최대한 사실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낙태가 여성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바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배 교수는 “낙태는 여성의 몸과 마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외상”이라며, “낙태는 개인적 외상을 넘어 사회적 외상, 트라우마로 인식해야 하며, 낙태가 여성에게 정신적·사회적·의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시술이라는데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순철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험대에 있다”며, “이것이 낙태의 증가로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실험은 실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만큼 앞으로 사회적 주제는 ‘낙태’가 아니라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사회는 어떻게 사라져가는 생명을 보호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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