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들의 새로운 삶에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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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새로운 삶에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7.09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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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20년째 노숙인·쪽방촌 주민 돕는 나누미

2년 전 취임한 박성암 이사장, 자활 중심으로 새로운 사역 전개

차별과 낙인이 자활의 가장 큰 벽…“교회가 따뜻하게 품어줬으면”

20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어찌 말처럼 쉬울까. 하지만 나누미는 지난 20년의 세월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에게 바쳤다. 사람으로 따져도 어린티를 벗고 성인으로 첫발을 내딛을 시기다. 세상적인 명예에 욕심이 날만도 한데 나누미의 시선은 지금도 변함없이 낮은 곳만을 향해 있다.

1999년 박종환 목사와 김해연 사모가 굶어 쓰러진 노숙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시작했던 나누미는 이제 아들 박성암 이사장이 사역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얼핏 보면 이사장이란 거창한 직함에 혈연으로 물려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지단체 나누미의 이사장 자리엔 영광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자비량으로 노숙인, 쪽방촌 주민들과 동고동락해야 하는 섬김의 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지난달 27일 2년 전부터 나누미를 이끌고 있는 박성암 이사장을 나누미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역 시작 20주년, 법인 설립 5주년을 맞은 나누미의 당찬 비전을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섬김과 헌신의 대물림

박종환 목사가 노숙인 무료급식 사역을 시작하던 1999년 박성암 이사장은 한창 사춘기를 보내던 고등학생이었다. 친구들의 시선에 예민한 시기, 스스럼없이 노숙인들과 함께했던 부모님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신실하게 어려운 이들을 섬기던 박 목사 부부의 모습은 결국 박성암 이사장의 진로까지 바꿔 놨다.

“처음엔 왜 저렇게 고생을 자처하실까 싶었습니다. 어렸을 땐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죠. 하지만 한결같은 부모님의 섬김은 점차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다른 이들처럼 드라마 같은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저를 쓰시려고 자연스레 길을 이끄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 보고 배운 것은 부모의 말보다는 삶 그 자체였다. 욕심 하나 없이 가시밭길을 묵묵히 걷는 모습은 박성암 이사장의 생각을 바꿔놓기 충분했다. 그는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 중 한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진로에 대한 확신이 서자 즉시 결단을 내렸다. 신학도에서 복지로 전공을 바꾸고 백석대와 명지대를 거쳐 교토대학원 유학까지 마쳤다.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온 사역을 준비 없이 이어가고 싶지 않아서다. 차근차근 준비한 그의 전문성과 경험들은 지난 2년 나누미를 이끌며 십분 활용되고 있다.

▲ 섬김의 길을 이어받고 있는 나누미 박성암 이사장(오른쪽)과 박종환 목사

새로운 시작을 응원합니다

리더십은 바뀌었지만 나누미의 정체성이자 중심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노숙인 무료급식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복지는 일단 사람을 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 그와 동시에 스무 살 청년의 시기를 맞은 나누미는 새로운 단계를 꿈꾼다. 그것은 바로 노숙인들이 사회에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자활 사업이다.

“노숙인들을 먹이고 입히는 사역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반복해서는 이들의 삶이 달라지기가 쉽지 않죠. 이들도 사회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해야 합니다. 도움만 있다면 당당한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누미에게는 박종환 목사님과 사모님이 20년간 노숙인들과 함께 하며 쌓아온 끈끈한 신뢰가 있어요. 이 신뢰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노숙인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돕고 싶습니다.”

나누미는 노숙인들의 새출발을 위해 사랑·희망 자활학교를 시작했다. 자활학교에서는 노숙인들에게 사회 진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의지를 북돋아주는 상담과 심리 프로그램부터 취업을 위한 기술교육과 사회성 향상을 위한 문화 활동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자활은 노숙인 사역의 마지막 목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완벽한 재정착을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는 노숙인 스스로의 재활 의지부터 노숙인들이 교육받을 동안 지낼 공간과 교육을 맡을 강사까지. 하지만 박성암 이사장은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는 문제에 불과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노숙인들의 자활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사회의 낙인이라는 것이다.

“노숙인들이 자활 프로그램을 마쳐도 기업에서는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에 잘 적응해서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신뢰하기 어렵다는 거죠. 힘들게 일자리를 구해도 다른 직원들의 색안경을 쓴 시선이 쏟아집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노숙인이 힘들게 의지를 들여 오랜 기간 기술 교육까지 착실하게 참여했는데 차별적 시선 때문에 다시 무너지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애초에 자활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공률이 1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실패의 이유가 노숙인 본인의 의지 부족이었다면 다시 독려하고 일으켜 세우면 된다. 하지만 사회의 무시와 천대에 상처받고 노숙생활로 돌아온 이들에게는 다시 한 번 도전하자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해진다.

“노숙인들은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이들이 교회로 온다면, 혹은 만에 하나 성도분들이 다니는 직장에 오게 된다면 차별 없이 따뜻한 사랑의 눈길로 바라봐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도와주시고 한 번만 손잡아 주시고 기도해주시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나누미’ 나누미가 20년 동안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박성암 이사장은 거기에 한 문구를 더 추가했다. 바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나누미’다. 다른 이들보다 형편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사람다운 삶’에서 멀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 어려운 이들도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누미가 지금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특히 쪽방촌 아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대책 없이 노출돼 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임에도 관심이 없는 이유는 숫자가 적어서다. 나누미가 사역지로 삼고 있는 동자동을 봐도 약 1천명의 주민 중 아이들은 1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동자동은 쪽방촌 중에서도 특이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쪽방촌이 대부분 도시 외곽에 떨어져 위치한 반면 동자동은 서울 중심가 한복판에서 빌딩숲에 둘러 싸여 있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주변의 화려함과 열악한 자신의 집을 비교하며 위화감을 느끼고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질 위험이 큽니다. 이런 아이들을 단순히 숫자가 적다고 정책과 관심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나누미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여행을 기획했다. 이들 중에는 엄마와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 본 아이들도 있다. 밥 한 끼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는 일 역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쪽방촌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사랑나눔합창단을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랑나눔합창단은 그 자신들도 형편이 어렵지만 시간을 쪼개 연습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순회공연을 펼친다. 서울역 노숙인들과 쪽방촌 주민들이 함께 서울역의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그 모습을 믿기 어려웠는지 연출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고 박성암 이사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고 살아왔던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남을 돕기 시작하면 그분들이 스스로의 삶을 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전 그분들이 지금까지 단지 남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도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나누미. 그러나 단체의 힘만으로는 현실의 벽이 높다. 박성암 이사장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사역에 한국교회가 적극 동참해줬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그것이 복지단체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길일 뿐 아니라 복음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옛날과 비교하면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많이 추락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활동이라고 봅니다. 한국 개신교인이 천만이라고 하는데 교회가 복지와 교육 사역에 더 큰 관심을 가져 준다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곧 복음을 삶으로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릴 길이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비판의 대상이기보다 사회의 아름다운 본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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