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도 미움도 예수의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쓰나미 휩쓸고간 현장에 빵과 함께 복음 전하는 조영상 선교사
2011년 3월 쓰나미 직후 후쿠시마행…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
손동준 기자l승인2019.07.01 08:45:04l수정2019.07.03 16:32l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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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상 선교사가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한 큰 재난은 조영상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총회 파송)의 삶을 바꿔놓았다. 동일본 쓰나미 당시 그는 도쿄에서 20여 년째 현지인을 대상으로 사역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엄청난 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본 조 선교사는 방사능과 여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곳이 조 선교사의 사역지가 됐다.

쓰나미로 인해 변화된 건 조 선교사 자신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희망마저 무너져버린 참혹한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이시노마끼에 위치한 오아시스 교회와 조영상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려움을 무릅쓰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쓰나미는 시속 700㎞의 속도로 태평양연안의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거리인 450㎞ 길이의 해안이 다 쓰나미에 휩쓸렸다. 이 쓰나미로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 등 일본 동북부 3개 현에서 당시 1만6000여 명이 숨졌다. 더 큰 문제는 방사능이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냉각장치가 고장 나면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것. 과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마찬가지로 후쿠시마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될 거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조 선교사는 당시 도쿄에 있었다. 엄청난 재해 앞에 두려워하고 있던 그 때 한국의 교단 교회들로부터 연락이 이어졌다. 한국교회가 일본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물질로도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구호의 통로가 되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그가 있던 도쿄역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위기를 느끼던 때였다.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대답이 먼저 나왔다. 전화를 끊고 난 뒤 후회가 밀려왔다.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내 들더군요. 그래서 선교사들에게 전문을 보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가라고 하니 함께 가자고요. 그랬더니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그 위험한 데를 어떻게 가요’하고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가보자고 독려했지요. 방사능 세슘으로 인한 피해는 30년 뒤에나 나온다고 하니 50살 넘은 사람들은 나와 함께 가자고요.”

조 선교사의 요청을 받고 찾아온 사람은 두 명. 둘 중 한 명은 아직 40대 초반이었다. 그들을 향해 “정말 괜찮겠어?” 하고 묻자 한 명은 “짐만 실어드리고 기도해드리려 왔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라며 조 선교사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두 사람의 선발대가 꾸려졌고 그것이 전환점이 됐다.

 

▲ 일본 동북부의 미야기현 이시노마끼 전경.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다

조 선교사가 먼저 구호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건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 목회자와 교회들이었다. 휴대폰을 통해 그들로부터 피해 상황을 전해들은 그는 산 속과 바닷가에 흩어진 교회들로 향했다. 피해지역 교회들은 물과 전기가 끊기고 쌀도 떨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교회를 돕는 일은 피난민들을 지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군용차량이 피난민을 실어 날랐지만 피난차량을 타지 못한 노약자들은 교회로 몸을 피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위험지역에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명절 교통정체를 연상시키는 피난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쿠시마로 올라가는 차량은 군용차량과 소방차, 구호품을 싣고 가는 대형 트럭뿐이었다. 일반승용차는 조 선교사 일행이 탄 차량이 유일했다. 몇군데의 경찰이 조 선교사 일행을 막아서고는 위험을 알리기도 했다. 피난민을 도우러 간다는 말에 경찰은 “책임지지 않겠다”며 그러나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이고 가솔린을 어느 주유소에서든지 바이패스해서 우선으로 가득채워 살 수있는 ‘긴급비상통행증’을 조 선교사에게 주었다.

통행증을 받기전까지는 난관의 연속이였다.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고 밤새도록 기다리는 피난민들로 가득했다.동경지역도 제한되어 반나절을 기다려도 한번에 2000엔(15리터정도) 밖에 넣을 수 없도록 제한됐다. 도쿄에서 후쿠시마북쪽 소마시 까지 장장 3박 4일이 걸렸다.

목적지였던 후쿠시마에 도착하고 교회에 짐을 풀었다. 피난조차 떠날 수 없었던 어르신들이 교회에 몸을 피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 선교사 일행은 세교회와 양로원을 중심으로 3일간 구호품을 나누고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원수를 사랑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5일간 구호활동을 하고 돌아왔으나 마음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이후 매주 월요일에 떠나서 토요일에 도쿄로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했지요. 도쿄에는 막 개척한지 3년 된 교회가 있었는데 25명 교인 가운데 5명의 일본인을 빼면 모두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17명의 한국인들은 쓰나미 발생과 원전폭발 후 열흘동안에 한국으로 모두 돌아갔습니다. 남은 교인들은 제 사역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계속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사역이 시작된 거죠.”

그렇게 조 선교사는 2년을 도쿄와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등을 오가며 일본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교회와 지역의 난민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2년 뒤에는 쓰나미로 폐허가 되고 4천여 명이 사망한 어항도시인 이시노마끼시에 세워진 쉼터 '오아시스'를 개척교회장소로 결정했다. 정착 초기에 이 건물은 교회를 알리는 십자가 등의 상징도 없이 지역 주민의의사소통의 구실을 하며 의식주를 공급하는 주민지원센터와 쉼터로 쓰였다. 쉼터는 지역의 많은 현지인들에게 ‘오아시스’의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의리’로 성경공부에 참석하던 주민들이 한 명, 두 명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10명이 세례를 받았고 20여명의 구도자들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사도행전의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 조영상 선교사는 지난 2017년 편의점부지를 매입하여 교회로 리모델링했다.

지난 2017년 9월에는 편의점 건물이 있는 302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50평의 편의점을 리모델링 한 뒤 ‘오아시스교회’라는 이름으로 헌당했다. 3억5천만원을 모금하여 세운 교회의 재산권은 가장 많이 헌금한 일본교회로 넘겼고, 목사관으로 사용하는 아파트의 소유권도 일본교회로 종교법인에 귀속시켰다. 이런 한국인 선교사의 결단과 실천은 일본 현지에서도 매우 놀라운 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시노마끼 사람들이 그를 만나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기리스도사마니 오 세와니 나리마시다’. ‘예수님에게 신세를 졌다’는 뜻이다. 쓰나미 이전에 5개뿐이던 이시노마끼지역의 교회 수가 현재는 24개로 크게 늘었다. 동경기독교대학선교연구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쓰나미 발생 4년 만에 이 지역에서 530명이 예수를 믿었다. 전도가 어렵다고 잘 알려진 일본에서 이 일은 ‘기적’으로 불린다. 일본 교회뿐 아니라 선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연구를 위해 이시노마끼를 자주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조 선교사는 “원수의 나라였어도 슬픔을 당하는 일본인들에게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이 전달되면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과는 한국 못지않게 역사적인 앙금이 있는 하와이교회 사람들의 헌신이 현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 큰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요청으로 시작된 사역이지만 한국에서는 쓰나미 발생 한 달 뒤인 4월 무렵부터 독도 문제를 놓고 반일감정이 고조됐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구호는 필요 없다’는 말로 악감정을 부추겼지요. 한국에선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아서 재앙을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때 미국교회는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하와이에서 제일 먼저 왔습니다. ‘진주만’의 역사로 인해 깊은 앙금이 있음에도 교인들이 와서 자원봉사를 한 겁니다. 그걸 보고 깨달았죠. 비록 원수였지만 원수가 굶주릴 때 먹이고, 헐벗을 때 입히는 것이 율법의완성이라는 것을요.”

▲ 조영상 선교사와 오아시스교회 교인들.

조 선교사는 쓰나미로 피해를 받은 50여 작은 어촌마을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두군데 정도의 교회를 추가로 개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기독교인구가 1퍼센트에 머물러 있는 일본의 수많은 미전도지 개척선교사와 점점 늘어가고 있는 무목교회를 섬길 사역자들이 많이 필요하다며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했다. 그는 “어떤 장벽도 교회의 협력을 막을 수 없다”며 “선교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교회가 다 살아나기를 바란다. 이 일을 위해 실버 전문인 그룹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쓰나미 피해지역인 이시노마끼에서 사역중인 조영상 일본 선교사. 예장백석대신 파송인 조 선교사가족은 일본에서 29년째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손동준 기자  djson@igood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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