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3.1운동 100주년에 ‘묵도’가 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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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3.1운동 100주년에 ‘묵도’가 웬 말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6.18 16: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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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 국가조찬기도회였다. 지난해 일산 킨텍스로 장소가 변경됐다 서울 코엑스로 돌아오면서 6월로 미뤄졌던 것이 전조였다. 결국 탄핵 관련 사태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대통령이 기도회에 참석하지 못했고 예년에 비해 다소 단출한 행사로 치러졌다.

개회사도 설교문도 없이 홀쭉했던 순서지에서 유독 눈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었다. 2부 기도회 첫 번째 순서로 기록된 ‘묵도’였다.

언뜻 익숙한 단어로 들리는 ‘묵도’는 사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의 잔재다. 일제는 교회가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떠오르자 기존엔 없던 ‘묵도’라는 개념을 예배시간에 넣도록 강요했다. 여기서 ‘묵도’란 일본인들이 신사나 가정에서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며 묵념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기 전에 자신들의 신을 먼저 숭배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묵도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찬양이나 반주로 예배의 문을 여는 교회가 많아지고 잘못된 단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보기 힘든 단어가 됐다. 그런데 교회에서, 특히 공식행사에선 더더욱 찾아볼 수 없던 ‘묵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국가조찬기도회에 등장한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렸던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하지만 이날 기도회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순서가 없었음은 물론, 사라져 가는 일제의 잔재를 다시 끄집어내는 치명적 실수까지 저질러 버렸다.

국가조찬기도회는 1948년 제헌국회의 기도로 시작됐다. 식민지배로 상처 입은 나라와 민족을 살릴 길은 기도밖에 없다는 숭고한 마음이었다. 그 숭고한 뜻을 이어받고자 한다면 좀 더 철저한 준비와 기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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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ㄷㄱ 2019-06-18 17:35:26
좋은 지적입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