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하하’ 누나도 좋지만 ‘이름 없는 예배자’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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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하하’ 누나도 좋지만 ‘이름 없는 예배자’ 되기 원합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6.17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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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석- 하쥬리 교수

최근 노네임워십 첫 싱글 ‘주 은혜가 흘러’ 작곡‧반주로 참여

백석예술대 출강하며 후학 양성…서울사이버대 겸임교수 임용

 

▲ 찬양 사역자 하쥬리 교수. 하 교수는 백석예술대와 명지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연예인 ‘하하’의 누나로 잘 알려진 하쥬리 교수(서울사이버대학교 겸임). 하 교수가 최근 ‘노네임워십’이라는 팀의 한 사람으로 첫 싱글곡 ‘주의 은혜가 흘러’를 발표했다. 하 교수는 이 곡의 공동 작곡과 반주를 맡았는데, 곡이 공개된 이후 각종 CCM 음원 사이트와 SNS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실용음악으로 잘 알려진 버클리음대를 졸업한 뒤 국내로 돌아와 ‘스트로베리레인’이라는 밴드와 ‘미세스피아노’라는 듀오팀에서 작곡 및 건반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배자’라는 정체성은 그에게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담긴 곡이 바로 ‘주의 은혜가 흘러’다.

“나의 약함을 원하시네 내게 주신 은혜가 날 채우네. 나의 약함을 부르시네. 내게 주신 능력이 날 세우네.”

가사는 팀이 소속된 ‘이름없는교회’의 담임 백성훈 목사가 썼지만 하 교수의 삶의 고백과도 일치한다. 하 교수는 “내 음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내가 온전히 영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예배의 도구가 될 때”라며 “돈과 명예를 따르기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음악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예배자가 되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밝혔다.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

일찍이 외가로부터 4대째 신앙을 물려받았다. 신앙과 함께 음악을 사랑하는 가풍도 온전히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 교육자이자 작곡가셨던 외조부는 물론이고, 집안에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모이면 늘 함께 찬양을 하는 분위기 속에 자랄 수 있었다.

‘융드옥정’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그의 어머니도 본래 꿈이 피아니스트였다. 하 교수를 임신하고 있을 때부터 딸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기도했고, 걸음마를 뗀 이후에는 피아노에 앉혔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어린 하쥬리에겐 무겁게 다가왔다. 피아노 연주를 온전히 즐길 수 없었고 도망치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때 예배 반주와 만났다.

“이촌동 충신교회를 다니던 어린 시절이었어요. 박종순 목사님의 딸 박에스더 언니가 반주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잘 치고 아름다운 거예요. 그 언니를 동경하면서 저도 반주자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코드가 뭔지도 모르던 때였는데 반주를 하다보면 마치 하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경지에 도달할 만큼 몰입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에스더 언니의 대타로 서게 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예배 반주자로 활동은 계속됐지만 전공은 하지 않았다. 대학도 피아노가 아닌 공부로 갔다. 대학시절에는 동생의 연예계 데뷔를 위해 한창 뒷바라지를 했다. 당시 동생 하하 씨는 기획사를 다니면서 밑바닥에서 청소부터 했다. 동생의 데모테이프를 함께 만들고 입시 반주도 직접 만들었다. 그런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허무가 찾아왔다.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번에는 클래식이 아닌 실용음악으로 방향을 정했다.

 

▲ 하 교수가 작곡과 피아노 반주로 참여한 노네임워십의 첫 싱글 '주 은혜가 흘러'가 최근 발매됐다. '주 은혜가 흘러'는 각종 음원 사이트와 유튜브 등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힘 뺄 때 일하시는 하나님

김광민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교수들의 레슨을 받고 결국 미국의 버클리음대에 진학했다. 예배 반주자로서 더 깊은 찬양을 드리고싶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서 성공하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적인 마음을 아시고 그를 단련하셨다. 높아지려 할수록 오히려 더 낮아졌다. 공부도 계획처럼 되지 않았고 건강도 나빠졌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가 붙잡은 곳은 다시 교회였다. 이민교회 반주자로 섬기면서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송정미 씨를 비롯한 유명 CCM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가 꼽는 최고의 순간은 교회 반주자로 섬기던 시절이다.

“가장 즐거웠던 시절을 꼽으라면 결혼 전 온누리교회 반주자로 찬양팀을 섬겼던 때에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제가 깨닫는 건 사람이 계획을 해서 하는 일은 결국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그것이 찬양과 관계된 일이라도 말이죠. 하나님 관점에서 내 계획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힘을 다 빼고 따라갈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생 하하 씨가 음악 활동을 권유하기도 했다. 음악 활동보다 육아와 후학양성에 더 큰 힘을 쏟고 있는 누나의 재능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하 교수 본인은 급하지 않다. 차근차근 영적인 건강을 추구하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 보면 하나님의 때에 자신을 쓸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제게 음악의 소명을 주셨다면 하나님의 때에 저를 정확하게 사용하시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지방이나 서울의 작은 교회들의 예배 음악이 뜨겁게 일어나는 일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힘을 쏟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써 주신 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앞으로의 제삶도 이끄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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