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같은 주님을 섬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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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같은 주님을 섬기는데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6.04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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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 반대국민대회 취재를 위해 현장으로 향했다. 주최 측은 종교색을 줄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개신교가 동성애 반대운동의 중심이었다. 목회자들이 무대에 올랐고 행사 기획과 주요 순서를 개신교계가 도맡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며 사랑하기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짖었다. 이날 행사는 동성애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내로 포용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퍼레이드까지 취재를 마치고 서울광장 퀴어축제의 행렬에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마침 퀴어축제 측도 거리 퍼레이드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갈 수는 없어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는 길목인 광화문역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편의점 벤치에 자리를 잡고 이온음료로 마른 목을 축이는데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예수 나의 첫사랑 되시네. 내 첫사랑…” 퀴어축제 퍼레이드에 참가했던 기독교 단체 ‘무지개 예수’ 차량에서 들려오는 찬양이었다. 차량에 타있던 인도자가 “할렐루야”를 외치면 뒤따르는 행렬은 “아멘”하고 답했다. 참가자들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 피켓을 들고 걸었다. 작년까진 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이었다.

같은 예수를 믿고 같은 찬양을 부르는데. 양쪽 모두 사랑을 외치고 포용을 말하는데. 이들을 갈라놓은 불과 십여 미터 길이의 도로는 건너서는 안 되는 스틱스강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퀴어축제에 참가한 기독교 단체들을 가리켜 당신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기자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으며 서로를 향해 사랑과 포용을 외치지만 정작 누군가 먼저 도로를 건너 손을 내밀지는 않는 이 상황이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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